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충주지씨시조(忠州池氏),지경(池鏡),충주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0 15:04 수정일 : 2019-10-30 14:48

지씨의 연원

황명만성통보(皇明萬姓統譜)와 운부군옥(韻府群玉)에 『지씨(池氏)는 서하(西河:중국의 지명) 땅에서 나서 그 산 곳(居住地)의 이름으로 성(姓)을 삼으니 치음(徵音:五音의 하나)에 속(屬)한다』하였고 또 성씨비고(姓氏備考:책이름)에는「서하(西河)는 경치 좋은 곳으로 계속하여 물이 맑게 흐르는데 진(秦)과 송(宋)나라에서 으뜸인 고장으로 지자화(池子華)는 지(秦)나라 승상(丞相)이었고, 지몽리(池夢鯉)는 송(宋)나라 함순(咸淳:南宋-1265~1574)년간에 특별과거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였으며, 한(漢)나라 지원(池瑗)은 중모령(中牟令)으로 어진이(賢人)로 이름이 낫고, 송(宋)나라 지광정(池光庭)은 진사(進士)로 문학(文學:글과 학문)으로써 이름을 떨쳤는바 모두 『장계(長溪) 사람이다』하였다.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충주지씨시조 (始祖)

충주지씨(忠州池氏)는 중국(中國) 홍농(弘農:河南省靈寶地方) 출신인 선의공(宣懿公) 지경(池鏡:903~1003)을 시조(始祖)로 한다. 선의공은 당소종(唐昭宗) 3년(903)에 홍농 기주 주락산 아래(岐周 周樂山下)에서 출생하여 960년에 송(宋) 단명전(端明殿) 태학사(太學士)로 고려국(高麗國:光宗11年 庚申)에 오셔서 금자광록대부 태보평장서(金紫光祿大夫 太保平章事)의 벼슬을 지내며 신생(新生) 고려국의 제도 정비에 크게 공헌하였고 계속 고려에 정착하여 중화 당악(中和 唐岳:현 中和郡 唐井面 唐村里)에서 만년을 보냈으며 수(壽)가 101歲로 사주(四柱)가 四癸亥라고 전한다.

그 후 6세손(六世孫) 지종해(池宗海:1032~?)가 충주(忠州)로 취거(聚居:장가가서 살았음)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문종 25년(1071)에 충원백(忠原伯)에 봉하여 자손이 세거(世居) 하였기에 충주로 본관(本貫)을 삼았다.

또 6세손(六世孫) 지중익(池重翼)은 고려 정종(靖宗) 문종(文宗) 년간에 평장사(平章事)로 낳아서부터 상모(狀貌)가 기이(奇異)하여 겨드랑이에 물고기 비늘이 있는 신기(神奇)한 일이 있으니 임금이 보고 매우 이상히 여기며 성(姓)을 어씨(魚氏)로 하사(下賜)하니 충주어씨(忠州魚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하며, 후손(後孫)인 예성군(蘂城君) 어유소(魚有沼)는 조선 세조때 대장군(大將軍)으로 야인(野人) 토벌에 공이 있고 우찬성(右贊成), 원수(元帥) 겸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를 역임하였고 시호(諡號)는 정장공(貞莊公)이다.

관 향 (貫鄕)

충주(忠州)는 중원(中原), 충원(忠原) 예성(蘂城) 중앙탑(中央塔) 한반내(正半川) 등 지명(地名)이 말하듯 한반도(韓半島)의 중심(中心)에 위치한 요지(要地)로서 삼국시대부터 서로 차지하려는 곳인바 본시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으로 미을성(未乙省) 완장성(薍長省)이라고 하다가 신라(新羅)에 귀속되면서 진흥왕(眞興王)때는 소경(小京)을 두고 귀족(貴族)과 6부 호족(豪族)을 이주시켰고, 경덕왕(景德王)때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치었고, 고려(高麗) 태조때 충주(忠州)로 개칭(改稱)하고 성종은 목사(牧使),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중원도(中原道)에 속하게 하였다. 현종(顯宗)때 안무사(按撫使)로 하였다가 8목(八牧)중 하나로 정하고 그 후 고종(高宗) 41年 국원경(國原京)으로 올리였다가 다시 목사(牧使)로 하였고, 조선조에서는 그대로 충주목사(忠州牧使)를 두었다가 高宗 32年 전국을 23부(府)로 개편(改編)할 때 충주부(忠州府)로 승격시켜 관찰사(觀察使)를 두어 충청좌도(忠淸左道)의 수부(首府)였으나 1908년 도청이 청주(淸州)로 이전하고, 1956년 충주시(忠州市)로 현재에 이른다. 위치는 충청북도의 북부이나 우리나라의 중앙지점에 있으며 한강(漢江)과 달천(達川)이 합류하는 곳에 있어 평야가 넓고 비옥하며 인심과 풍속이 순후(淳厚)하고, 교통(交通)과 수리(水利)가 매우 편하다. 사적(史蹟)으로는 탄금대(彈琴臺), 중앙탑(中央塔), 고구려 중원비(高句麗 中原碑), 충열사(忠烈祠)와 여러곳의 山城과 수안보(水安堡), 능암(陵岩) 온천(溫泉) 등이 있고 국내 최대의 충주댐(忠州댐), 그 외에 많은 문화재(文化財)가 있다.


씨족사 개요

지씨(池氏)는 충주(忠州) 단일본(單一本)으로 일부는 단양(丹陽) 광주(廣州) 등을 쓰고 있으나 세거지(世居地)에 불과하다. 충주지씨는 고려초(光宗 11年:960)부터 중앙(中央)의 지배계급(支配階級)으로 정착(定着)하여 대대(代代)로 많은 人物을 배출하고 고려말(高麗末)까지 세록구신(世祿舊臣)으로 벼슬이 끊이지 않아 고려조(高麗朝)에만 36평장사(平章事)와 24대장군(大將軍)을 배출한 명문(名門)으로 특히 지씨려말사걸(池氏麗末四傑)이라 일컬는 찬성사(贊成事) 지윤(池奫:李成桂의 長男 鎭安大君의 丈人)과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 지환(池桓)의 아들 상원수(上元帥) 지용도(池龍圖-忠懿公), 상원수 지용수(池龍壽-忠武公) 형제 그리고, 판호조사(判戶曺事) 지복룡(池福龍)의 아들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 지용기(池湧奇)장군 등이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지윤(池奫)은 우왕때 찬성사(贊成事)로 서북면 도원수(西北面 都元帥)가 되어 북원(北元)을 방비하였고 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심왕(瀋王) 모자의 반역을 방비하였으며 중앙의 인사(人事)를 담당하는 정방제조(政房提調)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판 판도사사(判 版圖司事)의 직무를 겸하면서 재상에 올랐다.

충의공(忠懿公) 지용도(池龍圖)는 서북면(西北面) 상원수(上元帥)로 거제(巨濟) 고성(固城)에 처들어온 왜적(倭賊)을 격퇴하고 1356년 금병(金兵)의 침입을 최영(崔瑩),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나아가 크게 격파하였다. 공민왕 7년에 내사시 문하평장사(內史寺 門下平章事)겸 이부랑 판혜덕부사(吏部郞 判惠德府事)가 되었고, 1364년 역적 최유(崔濡)가 요동으로부터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와 의주(義州)를 포위하니 아우 충무공(忠武公) 지용수(池龍壽)와 함께 나아가 물리쳤다.

충무공(忠武公) 지용수(池龍壽)는 공민왕 12년(1363)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로 안우(安祐)와 같이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쳐 경성(京城)을 수복한 1等공신으로 전공판서(典工判書)에 임명되였고, 순무사(巡撫使)로 덕흥군(德興君) 최유(崔濡) 등 반적(叛賊)을 토벌한 공으로 다시 1등공신이 되고 밀직사(密直事) 지도첨의(知都僉議), 상원수(上元帥) 겸 평양윤(平壤尹)을 역임하고 공민왕 19년(1370) 서북면 상원수로서 이성계(李成桂) 양백안(楊伯顔) 등과 원(元)의 동령부(東寧府)를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등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다.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 지용기(池湧奇)는 공민왕때 삼사우윤(三司右尹)에 이르렀고 우왕(禑王)때 예의판서(禮儀判書), 밀직부사(密直副使)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수성분의공신(輸誠奮義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 후 양광도 부원수(楊廣道 副元帥), 전라도 도순문사(全羅道 都巡問使) 도원수(都元帥) 등을 역임(歷任)하면서 남해안 일대에 출몰하는 왜적(倭賊)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특히 장흥(長興), 보성(寶城) 정읍(井邑) 나주(羅州) 등지의 전투에서 적 수십급(數十級)을 베고, 우리 백성 수백명을 포로에서 구출하였고, 응령역(應嶺驛)전투에서 적의 화살을 맞기도 하였다. 우왕 14년 위화도 회군때는 안주도 도원수(安州道 都元帥)로 이성계의 회군에 공을 세우고 찬성사(贊成事)로서 이성계 등과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하는 흥국사(興國寺) 모임에 참가한 9功臣의 한분으로 중흥공신(中興功臣) 충의군(忠義君)에 다시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에 봉(封)하였고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으나 윤이(尹彛), 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된 김종연(金宗衍) 당으로 지목, 탄핵을 받아 삼척(三陟)에 귀양갔다가 풀려나 충남 면천(沔川)에서 졸(卒)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 지용기(池湧奇)의 아들 지유용(池有容)은 세종(世宗)때 우군첨총제(右軍僉摠制)와 충청안무사(忠淸按撫使), 판경성부사(判鏡城府事), 종성도호부사(鍾城都護府使), 강계부사(江界府使) 등을 역임하였고 능력과 용맹을 갖추어 왕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판의주목사(判義州牧事)로 卒하니 왕이 부의를 보냈다.

지유용(池有容)의 아들 지개(池開)는 진사(進士),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官職에 나아갔으며, 이어 그 자손이 8代에 걸쳐 연속(連續)하여 進士, 生員에 급제 함으로서 무려 일문에 사마(司馬)가 22명이 배출되는 명문(名門)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에도 좌승지(左承旨) 지세함(池世涵:進士)과 그 아들 교관(敎官) 지달해(池達海) 도사(都事) 지달문(池達汶)형제, 그리고 지달해의 아들 왕자사부(王子師傅) 지봉휘(池鳳輝:進士) 부처(夫妻) 등이 삼세(三世)에 오효(五孝)로 정려(旌閭)와 사복십결(賜復十結)의 은전(恩典)을 받았다.

지달해(池達海)는 생원(生員)으로 시문(詩文)에 뛰어나 세상에 이름이 나서 中國에서까지 詩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광해군(光海君)때 시학교수(詩學敎授)로 추천되였으나 폐모론(癈母論)이 일자 일체의 관직을 멀리하고 충청도로 숨어버려 문장(文章)과 기절(氣節)뿐만 아니라 孝行으로 세상에서 추앙을 받았고, 김상용(金尙容), 김상헌(金尙憲), 이항복(李恒福), 유근(柳根) 등과 교의(交誼)가 두터웠다.

지덕해(池德海)도 생원(生員)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강직한 인물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충청도 소모관(忠淸道 召募官)으로 의병(義兵)과 군량미(軍糧米) 모집에 공이 컸으며 용강(龍岡) 령해부사(寧海府使) 등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지여해(池汝海)는 덕해(德海)의 재종제(再從弟)로 지용(智勇)이 뛰어난 무관(武官)으로 용천(龍川), 철산부사(鐵山府使) 등을 지냈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위하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별장(別將)으로 300명 결사대(決死隊)를 이끌고 城을 나아가 싸우다 순절(殉節)하니 병조참판(兵曹叅判)에 추증 되었다

지봉수(池鳳遂)는 효자(孝子) 증참판(贈叅判) 지달문(池達汶)의 아들로 진사(進士)에 합격,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종묘봉사(宗廟奉事)로 묘주(廟主)를 모시고 강화도(江華島)로 피난하였는데 체찰사(體察使)가 亂中에 풍류를 갖추고 술을 권하니 公이 정색(正色)을 하고 제찰사를 꾸짓었으며, 신주(神主)를 안전히 모실 계책을 건의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더니 마침내 강화가 적에게 함락 되여서는 모든 관원(官員)이 다 도망하되 혼자 묘주(廟主)를 지킨 의리로 적도 감히 해(害)하지 못하였다. 후에 회덕현감(懷德縣監)을 지내고 인조의 항복을 憤하게 여기고 槐山에 落鄕하여서 다시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충성군(忠城君) 지계최(池繼漼)는 인조(仁祖) 때 관서행영(關西行營)의 도원수(都元帥) 서로소모별장(西路召募別將)으로서 이괄(李适)의 반란군(叛亂軍)을 정충신(鄭忠信), 남이흥(南以興), 이수일(李守一) 등과 같이 맞아 섬멸하여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정되고 충성군(忠城君)에 봉했다. 그 후 남해현감(南海縣監), 의주판관(義州判官), 서흥부사(瑞興府使), 희천군수(熙川郡守), 등을 역임하며 치적을 남기고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적과 싸우다 신계(新溪)에서 순절(殉節)하니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추증하였다.

또한 지경철(池景澈)은 문장(文章) 도의(道義)가 훌륭하여 교관(敎官)으로서 병자호란(丙子胡亂)에 남한산성에 호가(扈駕)하여서는 척화소(斥和疏)를 올리더니 화친이 성립되자 관대(冠帶)를 찢고 귀향(歸鄕)하였으며, 그 아들 兄弟는 남한(南漢) 근친(覲親)中에 적에게 살해되니 충효양전(忠孝兩全)이라 하였다.

이렇듯 지씨(池氏)는 조선조에서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까지 많은 인물(人物)을 배출하였으나 청(淸)의 지배를 받은 인조(仁祖) 이후 출사(出仕)를 멀리하고 각지(各地)로 낙향(落鄕)하여 지조(志操)를 지키며 학문(學文)에만 힘을 썼다. 조선조(朝鮮朝) 중옆(中葉)에는 池門八鳳八海라하여 鳳字, 海字 항열(行列) 각 8名씩이 그 중에도 출중(出衆)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세조(世祖) 때 충청절제사(忠淸節制使)로 단종(端宗)을 복위하려다 화(禍)를 입은 지정(池淨:寧越 莊陵 配食壇 配享),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신립(申砬)의 별장으로 충주 탄금대에서 순절(殉節)한 판결사(判決事) 지하복(池河福), 관북(關北)에서 의병장(義兵將) 정문부(鄭文孚)와 같이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을 물리치고, 토적(土賊)을 목베인 좌승지 지달원(池達源:鏡城 彰烈祠 配享),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江華)에서 절개를 지킨 지평(持平), 지달원(池達遠), 문한(文翰)으로 이름난 이조정랑(吏曹正郞) 지달하(池達河), 지씨홍사(池氏鴻史)를 편찬한 지광한(池光翰), 성리학(性理學)의 대가(大家) 청구자(靑丘子) 지광진(池光晉), 그리고 성리학자(性理學者) 주하(柱下) 지운호(池運浩)의 오형제(五兄弟)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당대의 명사(名士)가 많다.

근대(近代)에 와서는 우리나라에 우두법(牛痘法:種痘法)을 처음 보급한 의학자(醫學者) 송촌(松村) 지석영(池錫永)이 뛰어났다. 1876년(고종 13) 수신사(修信使) 김기수(金綺秀)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종두법(種痘法)을 배워 온 박영선(朴永善)에게 종두법을 익혔으며, 김홍집(金弘集)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종두법(種痘法)을 배우고 돌아와서는 전주(全州) 등지에서 우두국을 설치하여 종두의 전국 보급을 시작하였고,「우두신설(牛痘新說)」을 저술하여 국민보건에 위대한 업적(業績)을 남겼으며, 그의 형인 백연(白蓮) 지운영(池運永)은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여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불려졌다.

한말(韓末)의 의병장(義兵將) 지홍문(池弘文)은 1907년 군대 해산령이 내리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강화갑곶(江華甲串)에서 일본군 1개 중대(中隊)를 격멸했으며, 독립운동가로 이름난 지청천(池靑天)은 3․1운동이 일어난 뒤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독립군(獨立軍) 간부를 양성하였고 청산리(靑山里) 전투 후에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작전을 피해 흑룡강(黑龍江)으로 이동하여, 김좌진(金佐鎭) 등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 항일전(抗日戰)을 수행하였으며 광복군(光復軍)을 통합(統合)한 후 광복군총사령관(光復軍總司令官)에 취임 활동하다가 8.15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건국초에 무임소장관을 역임하였고,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복장이 수여되었다. 만주(滿洲) 대학살 때 순국(殉國)한 지하영(池霞榮)과 함께 충주지씨(忠州池氏) 가문을 더욱 빛냈다.


충주지씨조상인물

고려시대(高麗時代) 인물(人物)

지경(池 鏡 : 903~1003) 字 자운(自雲), 號 암곡(巖谷), 諡.선의(宣懿), 中原 弘農人 宋端明殿太學士로 960年 奉使東來하였음, 官은 金紫光祿大夫 太保平章事

지해관(池海貫 : 939~?) 門下大雅 贊成事, 平章事

지영(池 瀛 : 965~?) 內史寺 平章事, 副元帥

지득상(池得尙 : 984~?) 門下 平章事

지겁(池 极 : 1011~?) 字 천일(天一), 號 운곡(雲谷), 領同政

지종해(池宗海 : 1032~?) 字 문숙(文淑), 號 운암(雲巖), 封 忠原伯, 門下侍郞 平章事, 公이 娶居忠州하여 忠州로 貫鄕을 삼고 子孫이 世居하였음, 見靑邱事林

지중익(池重翼 : 文宗때) 平章事, 公은 겨드랑이(腋)에 물고기비늘이 있는 신이(神異)가 있어 사성어씨(賜姓魚氏)로 忠州魚氏始祖가 됨

지헌(池 憲 : 1050~?) 字 희첨(希瞻), 號 성곡(省谷), 諡 문도(文道), 平章事

지신구(池愼耈 : 1075~?) 字 자익(子益), 號 독재(獨齋), 諡 공도(恭道), 內史寺 平章事

지희(池 希 : 1105~?) 吏部尙書 禁衛提調

지호문(池好文 : 1126~?) 字 청숙(淸淑), 號 매헌(梅軒), 諡 충간(忠簡), 內史寺 平章事

지자심(池資深 : 1149~?) 門下侍郞 平章事 征耽羅

지윤심(池允深 : 고종때.1217) 大將軍으로 楊廣 忠淸道 防禦使로 契丹族征伐

지의심(池義深 : 고종때.1231) 中郞將

지수(池 秀 :1148~?) 門下 平章事

지성삼(池聖三 : 1170~?) 太學士 贊成事

지흡(池 翕 : 1201~?) 字 화지(和之), 號 한죽(寒竹), 諡 문충(文忠), 門下 平章事

지덕노(池德老 : 1235~?) 字 성화(聖華), 號 석천(石川), 內史寺 平章事

지원부(池元夫 : 1242~?) 尙書 右僕射

지연(池 演 : 1275~?) 門下 平章事

지윤(池 奫 : ?~1377) 贊成事, 都元帥 屢立戰功

지환(池 桓 : 1280~) 號 달지(達之), 中郞將, 平章事

지복룡(池福龍 : 1301~1375?) 門下贊成事 判戶曹事 軍器尹

지용도(池龍圖 : 1308~?) 字 뇌성(雷聲), 號 月享, 諡 충의(忠懿), 上元帥, 平章事 智勇이 絶倫 屢立戰功

지용수(池龍壽 : 1313~?) 字 하성(河聲), 號 月松, 諡 충무(忠武), 上元帥 平壤尹 擊走紅巾賊

지용기(池湧奇 : 1330~1392) 號 의재(毅齋), 封 忠原府院君, 判三司事, 贊成事, 恭讓王을 擁立한 九功臣으로 倭寇격퇴에 공이 많음

지용하(池湧河 : 공민왕때) 太學士 入北關自靖之誼

지중해(池重海 : 공민왕때) 進士, 孝子로 㫌閭 見輿地勝覽

지몽구(池夢句 : 공민왕때) 孝子로 㫌閭 見輿地勝覽

지준(池 俊 : 예종때.1118) 南原府使

지복신(池福臣 : 인종때.1126) 大將軍

지석숭(池錫崇 : 인종때.1126) 郞將, 李資謙之亂에 竭誠扶王, 兵馬使로 妙淸討伐함

지호(池 顥 : 인종때.1126) 大將軍

지심(池 深 : 의종때.1148) 兵部尙書, 上將軍

지종준(池宗濬 : 명종때.1187) 國子監 及第

지득금(池得琴 : 명종때.1188) 太常寺 錄事

지귀수(池龜壽 : 신종때.1204) 給事同正 謀誅崔忠獻不果

지방숙(池方淑 : 희종때.1210) 郎將

지광수(池光守 : 고종때.1232) 令史

지순(池 珣 :고종때.1238) 科擧及第

지득룡(池得龍 : 충열왕때.1278) 綠事

지선(池 瑄 : 충열왕때.1283) 諡 장숙(莊肅), 中郞將, 西京留守로 두 번이나 使臣으로 元나라에 다녀옴

지윤보(池允輔 : ?~1295) 上元帥, 密直司事 侍從如元

지우공(池禹功 : 충열왕때.1302) 三司左事

지찬(池 贊 : 공민왕때.1354) 同知密直司事

지승경(池昇景 : 공민왕때.1363) 中郞將

지승해(池勝海 : 공민왕때.1365) 芮城府院君 楊州 檜岩寺碑文에 있음

지득청(池得淸 : 우왕때.1377) 洪州牧使로 倭兵을 물리침

지우연(池遇淵 : 우왕때.1377) 中郞將

지준(池 濬) 忠淸道 官吏

지창흡(池昌洽 : 예종때.1106) 內侍良醞令, 禮記, 中庸을 講論함

 

조선시대(朝鮮時代) 인물(人物)

■ 院 享

지용기(池湧奇 : 1330~1392) 號 의재(毅齋), 高麗判三司事, 光州 秉天祠, 忠原府院君

지정(池 淨 : 1431~1453) 字 희용(希容), 號 우송정(友松亭), 忠淸節制使, 莊陵 配食壇(1791), 公州 東鶴寺 肅慕殿, 일휘(一諱), 봉원(逢源)

지달원(池達源 : 1570~1632) 字 사진(士進), 戶曹佐郞, 鏡城 彰烈祠(顯宗7年)

지여해(池汝海 : 1591~1636) 字 수지(受之), 鐵山府使, 光州 秉天祠, 淸州 儉巖祠

지계최(池繼漼 : 1594~1637) 字 언숙(彦淑), 號 표곡(豹谷) 瑞興府使, 光州 秉天祠, 충성군(忠城君)

■ 忠 節(節義)

지계강(池繼江 : ?~1460) 進士 郭山郡守 1460년 將帥로서 女眞族討伐中 殉國, 父 文科 開

지계한(池繼漢 : 1419~1477) 保寧縣監 權勢를 멀리하고 淸州 隱居, 父 少尹 浩

지정(池 淨 : 1431~1453) 字 희용(希容), 號 友松亭, 忠淸節制使 端宗遜位時 被禍, 父 牧使 得泓

지용달(池龍達 : ?~1592) 字 사우(士愚), 進士 壬辰亂에 義兵將으로 戰死, 父 主簿 興新

지란수(池蘭秀 : 1482~?) 字 사형(士馨), 宣祖25년 壬辰倭亂時 倡義殉節, 父 進士 景延

지하복(池河福 : ?~1592) 字 원수(元綏), 贈判決事 壬辰亂 申砬別將으로 戰死, 父 司直 漢宗

지정(池 淨 : 세종때.1444) 咸吉道經歷, 泰安郡事로 倭寇防禦有功

지득해(池得海 : 선조때.1593) 倡義使 金千鎰 別將으로 晋州城 戰死

지달원(池達源 : 1570~1632) 字 사진(士進), 임진난에 倡義加藤淸正을 물리쳐 咸鏡道를 平定함, 贈左承旨, 父 進士 起龍

지달원(池達遠 : 1587~1651) 字 공심(公深), 號 죽리(竹里), 丙子胡亂에 入江都, 監役, 贈持平, 父 同樞 世浩

지달기(池達沂 : 仁祖때.1623) 武科 軍器寺僉正 靖社功臣, 父 贈左承旨 世涵

지계해(池繼海 : 1605~1627) 字 사중(嗣仲), 1637 副元帥 別將으로 西開에서 戰死, 父 佐郞 達源

지응규(池應奎 : 1571~1592) 字 응섭(應涉), 武勇絶倫 壬辰亂 申砬과 戰死, 父 灌

지덕해(池德海 : 1583~1641) 字 수오(受吾), 호 뇌봉(雷峰), 司憲府掌令 贈都承旨 文科 府使, 父 生員 景淸

지득룡(池得龍 : 1586~1627) 字 응유(應裕), 武科 仁祖때 姜弘立亂에 殉節, 父 軍資監正 彦淨

지여해(池汝海 : 1591~1636) 字 수지(受之), 武科 鐵山府使 贈兵曹叅判, 父 贈叅判 景湛

지봉수(池鳳遂 : 1595~1679) 字 현우(顯羽), 號 성옹(醒翁), 進士 宗廟令으로 丙子亂에 奉廟社主하고 入江都하여 節義가 있음, 父 都事 達汶

지경철(池景澈 : 1575~1651) 字 자징(子澄), 號 송간(松澗), 童蒙敎官 贈司僕寺正 南漢扈駕 媾成破歸, 父 嘉善 應德

지여량(池汝亮 : 1597~1627) 字 공명(孔明), 進士 西宮肅拜, 父 進士 鳳輝

지계최(池繼漼 : 1594~1637) 字 태승(泰升), 號 표곡(豹谷), 瑞興府使 贈漢城判尹, 忠城君, 父 贈戶判 世倫

지우룡(池遇龍 : 인조때.1636) 字 운서(雲瑞), 漆原縣監 丙子亂有功

지승란(池承蘭 : 인조때.1636) 丙子亂에 池德男과 西關에서 殉死

지기룡(池起龍 : 선조때.1637) 1637년 都元帥의 軍官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구원兵 소식을 전하여 褒賞

지일빈(池日賓 : 1653~1713) 字 자인(子寅), 武科 龍川府使 仁顯王后遜位時 棄官歸鄕, 父 贈承旨 聖龜

지후중(池厚重 : 1707~1743) 字 의여(懿汝), 號 계양(谿陽), 揚武從勤 贈軍資監正, 父 贈叅議 英潑

지우익(池友翼 : 1693~1774) 字 국진(國珍), 武科 揚武一等功臣, 羽林將, 南海縣監, 父 同樞 龍瑞

지좌영(池佐永 : 1860~1910) 字 자정(子正), 號 경헌(敬軒), 柳麟錫倡義에 나아가 공헌함

지원영(池源永 : 1872~1906) 字 사원(士遠), 호 회실(晦室), 乙巳 五條約反對 義兵 活動

지청천(池靑天 : 1888~1959) 字 대형(大亨), 號 백산(白山), 光復軍總司令官 無任所長官, 父 贈通政 在善

지달수(池達洙 : 1909~1969) 字 동수(東洙), 光復軍 活動, 父 白山 靑天

지경묵(池景黙 : 1822~1872) 字 용지(湧之), 號 용암(龍庵), 叅奉 丙寅洋擾 義兵將, 父 同樞 學胤

지휘수(池輝洙 : 1829~1918) 字 명재(明在), 아들 龍起와 義兵將으로 倭軍과 戰鬪

지용기(池龍起 : 1867~1908) 字 홍민(弘敏), 號 청악(靑岳), 韓末義兵將, 江原道 一帶에서 많은 戰功을 거두고 殉國함, 父 輝洙(明在)

지용호(池龍浩 : 1913~1949) 建國初 奉化警察署長으로 匪賊討伐中 殉職함

지중귀(池重龜 : 1849~?) 字 응오(應五), 號 율포(栗圃), 韓末 義兵活動展開함

■ 文 科

지개(池 開 : 1390~?) 繕工監直長 進士 文科, 父 判義州牧事 有容

지달하(池達河 : 1465~?) 字 거원(巨源), 進士, 1465 文科 吏曹正郞 承文院 校理, 父 承旨 得禮

지성해(池成海 : 1565~1635) 字 중심(仲深), 生員 1618 戊午庭試 文科及第 康翎縣監, 父 內禁將 以貞

지덕해(池德海 : 1583~1641) 字 수오(受吾), 號 뇌봉(雷峰), 生員 司憲府掌令 贈都承旨, 父 生員 景淸

지천석(池天錫 : 1620~1699) 字 대수(大受), 號 호산(壺山), 進士 1686 文科 叅奉

지흠(池 欽 : 1676~?) 肅宗壬午(1702)文科 延日縣監

지응룡(池應龍 : 1722~1789) 字 문첨(文瞻), 號 송강(松崗), 文科 司憲府掌令, 平海郡守, 父 同樞 萬游

지덕빈(池德斌 : 1747~1806) 字 원질(元質), 號 묵재(黙齋), 文科 司憲府 持平, 父 通德郞 翊龍

지석영(池錫永 : 1855~1934) 字 공윤(公允), 號 송촌(松村), 文科 東萊觀察使 有文集, 父 同樞 翼龍

지붕현(池鵬鉉 : 1857~?) 字 익화(翼化), 號 중봉(中峰), 文科 壯元 注書, 父 通政 元協

지봉령(池鳳翎 : 1838~?) 高宗 乙丑(1889) 文科

■ 筆 苑(書畵)

지득붕(池得鵬) 號 갈은(葛隱), 扶安縣監 筆法精妙, 父 叅奉 成海

지만기(池萬紀 : 1677~?) 字 천유(天維), 筆法이 闊達하고 精妙함, 父 府使 日賓

지운영(池運永 : 1852~1935) 字 공남(公南), 號 백연(白蓮), 書畵에 能함. 當代高名, 父 同樞 翼龍

지성채(池盛彩 : 1899~1980) 號 춘초(春草), 白蓮, 小琳 趙錫晋 門人, 父 白蓮 運永

지상민(池相玟 : 1875~1971) 字 문옥(文玉), 글씨를 잘씀

지창한(池昌翰 : 1851~1921) 號 백송(白松), 水墨文人畵風 蟹魚를 잘 그림, 茂山郡守지냄

■ 文學, 孝行, 其他

지빈(池 彬 : 중종때) 字 덕유(德裕), 1525년 生員 靖難 從勳, 父 判尹 自澄

지계해(池繼海) 進士 贈執義, 父 文科 開

지계해(池繼海 : 壬子生~?) 進士 池乙賢의 曾孫, 父 都事 有宗

지세문(池世文 : 1420~1471) 進士 敦寧府奉事, 父 敎授 乙浩

지준(池 浚 : 1442~1489) 字 명중(明仲), 世祖 壬午(1462)進士, 德山縣監, 父 進士 繼漢

지윤온(池允溫 : 1450~1532) 進士 開城府經歷, 父 進士 繼江

지득선(池得善 : 世宗때) 號 묵헌(黙軒), 通訓大夫 行訓練院僉正, 父 宣川府使 繼東

지경연(池景延 : 1459~1520) 字 회숙(晦叔), 進士 贊成事 池奫의 六世孫

지윤량(池允良) 進士 文行이 士友에 칭송

지용달(池龍達 : ?~1592) 字 사우(士愚), 進士 壬辰亂 義兵將

지달하(池達河 : 世祖時) 字 거원(巨源), 進士 1465文科 吏曹正郞 校理 吏文精明으로 칭송, 父 承旨 得禮

지경욱(池慶郁 : 1445~1497) 生員, 父 進士 世文

지한좌(池漢佐 : 1480~1550) 進士 連山縣監 司憲府監察, 父 進士 允溫

지한우(池漢佑 : 1482~?) 字 여성(汝星), 生員 漢城判官, 父 進士 允溫

지한보(池漢輔 : 1485~?) 進士 遊太學 士友 推重, 父 進士 允溫

지한필(池漢弼 : 1523~1582) 字 국진(國珍), 進士 進士 池漢補의 弟, 父 進士 允溫

지한근(池漢根) 字 여근(汝根), 進士, 父 贈叅議 允源

지한종(池漢宗) 進士, 父 淮陽府使 允濟

지승한(池承漢 : 1516~1577) 聽松 成守琛門人 慶源敎授 關北文學의 始祖로 칭송, 父 自浩

지세함(池世涵 : 1524~1587) 字 양중(養仲), 進士 贈左承旨 以孝로 칭송, 父 進士 漢佐

지춘경(池春慶 : 1568~1613) 贈戶曹叅議 壬辰亂에 兩親奉養 극진, 父 司直 漢宗

지형(池 泂) 以孝로 特除 叅奉, 父 副司直 繼泗

지달해(池達海 : 1541~1624) 字 득원(得源), 號 송정(松亭), 生員 童蒙敎官 詩文에 能하고 孝行이 出衆함, 父 贈承旨 世涵

지경청(池景淸 : 1548~1599) 字 직경(直卿), 號 한천(閒川), 生員 孝友篤敬, 父 叅判 蘭

지달문(池達汶 : 1569~1641) 字 문원(文源), 號 학동처사(鶴洞處士), 禁府都事 以孝로 賜復十結 贈叅判 旌閭, 父 贈承旨 世涵

지중염(池重廉) 孝親奉養 居喪三年, 廬墓以終制, 父 世鑑

지봉휘(池鳳輝 : 1564~1636) 字 덕이(德而), 號 부촌(浮村), 王子師傅 進士 牛溪成渾門人 夫婦俱孝行 旌閭, 父 敎官 達海

지기룡(池起龍 : 1548~1577) 字 응운(應雲), 進士, 父 慶源敎授 承漢

지세준(池世浚 : 1521~1601) 字 낙천(樂天), 進士 同中樞, 父 監察 漢復

지세호(池世浩 : 1529~1621) 字 만리(萬里), 進士 壽秩同樞, 父 贈叅判 漢永

지정원(池正源 : 1573~1637) 字 사안(士安), 進士 濟用監奉事 儒學으로 著名, 父 進士 起龍

지세영(池世英) 進士, 父 府使 漢宗

지세원(池世源) 生員, 府使 漢宗

지세문(池世文) 進士 厚陵叅奉, 父 府使 漢宗

지백린(池伯麟) 生員, 父 牧使 繼河

지중구(池仲龜) 字 응지(應之), 燕山七年(1501)生員, 海州判官, 父 吏曹正郞 達河

지수징(池守澄 : 1520~1571) 字 여성(汝成), 進士, 父 察訪 泌

지달사(池達泗 : 1554~1620) 字 도원(道源), 進士 贈叅判, 父 贈左承旨 世涵

지경명(池景溟 : 1572~1629) 字 중원(仲源), 進士 內資奉事, 父 隱德不仕 荃

지달용(池達龍) 進士, 父 生員 世源

지달해(池達海 : 世宗때) 進士 成三問 門人 文章으로 이름이 났음, 父 戶曹叅議 自允

지달수(池達洙 : 仁祖때) 字 성원(聖源), 牛溪成渾門人 文學으로 칭송, 父 左承旨 世涵

지달원(池達遠 : 1587~1651) 字 공심(公深), 號 죽리(竹里), 監役, 文章氣節이 卓越함, 父 同樞 世浩

지봉익(池鳳翼 : 1609~1664) 字 익지(翼之), 號 행산(杏山), 生員 私塾을 세워 秀才養成, 父 副護軍 達渭

지달심(池達深) 進士, 父 奉事 世淸

지영통(池永通) 進士 贈執義, 父 府使 世蓮

지성해(池成海 : 1565~1635) 字 중심(仲深), 生員 康翎縣監 文科, 父 內禁將 以貞

지연(池 淵 : 1574~?) 宣祖 丙午(1606) 進士, 父 訓導 達晦

지약해(池若海 : 1582~?) 字 수백(受伯), 生員 濟用監奉事 居淸州, 父 叅判 景湛

지덕해(池德海 : 1583~1641) 字 수오(受吾), 號 뇌봉(雷峰), 司憲府掌令 贈都承旨 生員 文科 居淸州, 父 生員 景淸

지봉기(池鳳岐 : 1583~1632) 一名應文 進士, 父 進士 達泗

지응해(池應海 : 1591~1650) 字 수이(受而), 仁祖2年 生員, 父 進士 景溟

지봉수(池鳳遂 : 1595~1679) 字 현우(顯羽), 號 성옹(醒翁), 仁祖甲子(1624)進士試壯元 懷德縣監 同中樞 有忠節, 父 都事 達汶

지봉유(池鳳游 : 1598~1671) 字 경함(景涵), 進士 縣監鳳遂의 弟 居槐山, 父 都事 達汶

지숙성(池淑性 : 1612~1661) 字 공필(公必), 進士, 父 秉節校尉 達鴻

지천석(池天錫 : 1620~1699) 字 대수(大受), 號 호산(壺山), 進士 文科 敎授承漢后 居安邊

지어약(池魚躍) 進士 贈戶曹叅判, 父 縣監 永深

지봉신(池鳳臣) 進士, 副護軍 贈叅判, 父 贈叅議 達洙

지여상(池汝尙 : 1586~?) 字 상보(尙甫), 進士 監察 壽同樞, 父 進士 鳳輝

지경일(池景舟日 : 1590~?) 生員 未娶卒, 父 康翎縣監 成海

지득일(池得舟日 : 1594~?) 字 용여(用汝), 生員 景舟日의 弟, 父 康翎縣監 成海

지여량(池汝亮 : 1597~1627) 字 공명(孔明), 進士 居公州, 父 王子師傅 鳳輝

지여상(池汝湘) 進士, 父 通德郞 鳳儀

지여규(池汝虯) 字 득운(得雲), 生員 居淸州, 父 雷峰 德海

지여천(池汝天) 進士, 父 進士 鳳游

지순명(池順命 : 1625~?) 進士, 父 敬元

지응명(池應溟 : 1646~?) 進士, 父 叅奉 鳳翔

지대립(池大立 : 1652~1714) 字 처일(處一), 號 해월(海月), 進士 贈叅判達泗의 孫, 父 應平

지원(池 源) 進士, 父 縣令 今祚

지인형(池仁亨) 進士, 父 陽智縣監 翼

지필만(池必萬 : 1581~1655) 字 대숙(大淑), 生員 光海9年(1617) 弟와 聯璧 生員, 父 臥龍

지필부(池必溥 : 1587~1650) 字 심숙(深叔), 生員 兄必萬과 聯璧 居忠州, 父 臥龍

지익(池 木益 : 1619~1674) 字 익보(益甫), 進士 叅判達泗의 曾孫, 父 奉事 大南

지계사(池繼泗 : 1589~1644) 字 도권(度權), 文章과 德行이 있음, 父 應奎

지응구(池應九 : ?~1682) 字 사연(士淵), 號 송암(松庵), 贈掌樂院正, 文行, 經述이 卓越함, 父 生員 鳳翼

지종옥(池宗沃 : 1646~1718) 字 이계(爾啓), 號 치암(痴庵), 志操文學이 卓異함 贈左承旨, 父 府使 若海

지성구(池聖龜 : 1625~1702) 字 사징(士徵), 文雅 高致함 贈左承旨 司僕寺正 進海의 嗣孫

지필동(池必東 : 1661~1717) 字 여회(汝會), 號 월곡(月谷), 文學 孝行으로 칭송, 父 錫龜

지성철(池性澈 : 1674~1749) 字 청지(聽之), 文學 孝行으로 칭송 醒翁鳳遂의 孫, 父 汝演

지성봉(池性奉 : 1680~1742) 字 덕봉(德奉), 進士 都事達汶의 曾孫 居槐山, 父 汝進

지의민(池義敏 : 1684~1762) 進士 叅判達泗의 曾孫, 父 進士 大立

지언남(池彦男) 進士, 父 進士 仁亨

지석귀(池錫龜 : 1639~1705) 字 춘서(春瑞), 號 남계(南溪), 孝로서 戶曺佐郞에 贈職됨, 父 生員 應海

지찬우(池燦雨 : 1671~1741) 字 유연(油然), 號 징청(澄淸), 孝誠으로 稱訟함, 父 啓浚

지수하(池秀荷 : 1579~1636) 丙子亂에 與弟池秀荇과 南漢山城 覲親中 被害 俱死, 父 敎官 景澈

지성동(池性東) 字 회숙(會淑), 孝誠으로 奇異가 있었음 旌閭, 父 僉中樞 汝寬

지이종(池以宗 : 1654~1746) 字 조해(朝海), 號 현묵재(玄黙齋), 孝行으로 呈文이 있음, 父 戶叅 喆生

지일광(池日光 : 1664~1691) 字 군실(君實), 贈叅判 以孝로 著稱, 父 贈承旨 聖龜

지경일(池慶日 : 1716~1788) 字 관숙(觀叔), 以孝로 贈戶曺叅判, 父 性泓

지관영(池觀泳 : 1653~1718) 以孝로 士林이 營邑에 呈文, 父 宗煥

지광한(池光翰 : 1695~1756) 字 휘보(輝甫), 號 설악(雪嶽), 文學으로 池氏鴻史등 文集있음, 父 必東

지득양(池得洋 : 1700~1763) 字 성재(成才), 號 경남(耕南), 文章이 端雅함 伯父性澈에게 受學, 父 處士 性澄

지광진(池光晉 : 1723~1776) 字 명수(明叟), 號 청구(靑邱), 文學으로 著稱 文集있음, 父 副司果 景灝

지광저(池光著 : 1738~1806) 字 계성(季誠), 號 성암(誠庵), 漁樵問答등 著述, 文章이 뛰어남, 父 副司果 景灝

지만유(池萬游 : 1687~1767) 字 천거(天擧), 號 우수(迂叟), 文學으로 著名, 同中樞, 父 贈叅判 日光

지석구(池錫耈 : 1722~1771) 字 국노(國老), 號 六二居士, 文章博學 詩文 禮說等 文集있음, 父 同樞 泰淵

지유성(池有城 : 1727~1776) 字 화언(和彦), 號 洋洋子, 雲坪宋能相門人 遺稿있음, 父 雪嶽 光翰

지세겸(池世謙 : 1763~1839) 字 자익(子益), 號 농은(農隱), 文學이 出衆함, 父 靑丘子 光晋

지세함(池世咸 : 1770~1840) 字 숙영(叔英), 號 근암(近庵), 文學이 깊고 두터웠고 遺文七卷있음, 父 叅議 光晳

지석윤(池錫胤 : 1783~1856) 字 운약(雲若), 號 죽애(竹崖), 孝行이 卓異, 經史와 詩禮에 能함, 父 老隱 德裕

지석주(池錫疇 : 1785~1829) 字 서구(叙九), 號 후송(後松), 孝行 文章으로 士林이 추앙, 父 正言 德斌

지석행(池錫行 : 1789~1854) 字 숙일(叔一), 孝誠至極 廬墓三年, 父 正言 德斌

지응룡(池應龍 : 1722~1789) 字 문첨(文瞻), 號 송강(松岡), 文科 掌令 平海郡守 詩文에 能함, 父 同樞 萬游

지운두(池運斗 : 1791~1854) 字 순여(純如), 號 죽창(竹牕), 儒學으로 著名 遺文있음, 父 贈叅判 世咸

지운호(池運浩 : 1793~1864) 字 중양(仲養), 號 주하(柱下), 進士로 文章이 뛰어났고 柱下集이 行于世, 父 贈叅判 世咸

지운규(池運奎 : 1800~1841) 字 문오(文五), 號 기재(幾齋), 儒學으로 著名 遺文있음, 父 贈叅判 世咸

지운제(池運濟 : 1800~1862) 字 치원(致源), 號 매계(梅溪), 生員으로 博學 篤行하였음, 父 世謙

지운회(池運會 : 1803~1891) 字 운경(雲卿), 號 양호(楊湖), 生員으로 程朱學에 밝았음, 父 贈叅判 世咸

지운상(池運象 : 1815~1893) 字 겸팔(兼八), 號 정재(正齋), 儒學으로 著名 遺文있음, 父 贈叅判 世咸

지덕빈(池德斌 : 1747~1806) 字 원질(元質), 號 묵재(黙齋), 文科 持平, 文元公宋明欽門人, 父 通德郞 翊龍

지석제(池碩濟 : 1778~1843) 字 여즙(汝楫), 文行이 師表가됨 子孫 敎訓篇著述 居槐山, 父 運英

지덕현(池德玄 : 1713~1774) 字 자화(子華), 孝行으로 이름이 있음, 父 翼慶

지일호(池日浩 : 1716~1792) 字 양직(養直), 沃溝縣監 母夫人에 孝誠이 至極, 父 營將 友翼

지덕유(池德裕 : 1745~1824) 字 자요(子饒), 號 노은(老隱), 孝行으로 이름남, 父 掌令 應龍

지겸제(池謙濟 : 1786~1851) 字 자삼(子三), 孝親奉養 士林尊重, 父 運翊

지석우(池碩愚 : 1719~1787) 字 관보(寬甫), 孝養偏母命旌, 父 通政 連發

지홍천(池弘天 : 1736~1812) 字 옥여(玉汝), 奉先에 聖意를 다함, 父 孝子 德玄

지정감(池淨鑑 : 1688~?) 字 대경(大鏡), 景宗癸卯(1723)에 進士 關西譜만듬 居安陵, 父 嘉善 泳

지달구(池達龜 : 1804~1883) 字 낙서(洛瑞), 進士 副護軍 叅議正顔后, 父 同樞 潤復

지한기(池漢記 : 1805~?) 字 전량(全亮), 進士 居天安, 父 通德郞 應會

지만현(池萬鉉 : 1857~1954) 字 순집(舜執), 號 청사(淸沙), 進士, 父 興達

지경호(池京滈 : 1841~1900) 字 종여(宗汝), 生員 忠城君12世孫 居原州, 父 浩天

지성은(池性殷 : 1855~1894) 字 경수(敬修), 生員, 父 副司果 錫林

지달수(池達守 : 成宗時) 字 사로(師魯), 1480年 生員, 居水原, 父 宣敎郞訓導 得櫓

지약수(池若洙 : 1784~?) 字 자안(子顔), 純祖25年(1825) 進士, 父 象坤

지선임(池善臨 : 1785~?) 字 인여(仁汝), 純祖9年(1809) 生員, 父 宗朝

지응주(池應珠) 字 옥여(玉汝), 生員 純祖9年(1809) 居定州, 父 嘉善 躍龍

지성해(池成海 : 1826~?) 字 윤청(允淸), 1873年 生員 居黃州, 父 景元

지병연(池秉衍 : 1854~?) 고종19년(1882) 進士 居會寧, 父 榮淳

지석구(池錫龜 : 1857~?) 고종13년(1876) 生員 居興陽, 父 潤復

지석순(池錫舜 : 1874~?) 고종25년(1888) 進士 居鐵原, 父 通訓 漢奎

지호영(池鎬永 : 1874~?) 고종25년(1888) 進士 居延安, 父 命休

지규척(池圭尺 : 1874~?) 고종신묘(1891) 生員, 居黃州, 父 監察 達河

지재룡(池在龍 : 1874~?) 고종31년(1894) 進士 居砥平, 父 通德郞 義顯

지홍석(池弘錫 : 1824~1902) 字 경효(景孝), 號 하동(霞東), 詩禮, 經學에 뛰어남 遺稿있음, 父 運會

지홍렴(池弘濂 : 1824~1880) 字 공무(公茂), 號 가은(稼隱), 詩文으로 著稱, 父 進士 運浩

지홍은(池弘溵 : 1838~1915) 字 공심(公深), 號 척와(惕窩), 經書와 韻文에 뛰어남 遺稿있음, 父 運象

지홍주(池弘霔 : 1838~1900) 字 군약(君若), 號 송암(松菴), 性理學에 밝음 遺文二卷

지석영(池錫永 : 1855~1934) 字 공윤(公允), 號 송촌(松村), 文科 東萊觀察使 牛痘普及 文集있음, 父 同樞 翼龍

지석홍(池錫洪 : 1790~1855) 字 서오(叙五), 號 執素齋, 文學이 出衆함 文獻誌 刊行, 父 正言 德斌

지철영(池徹永 : 1852~1897) 字 자명(子明), 號 소호(小湖), 文筆이 모두 훌륭했음, 父 弘圭

지좌영(池佐永 : 1860~1910) 字 자정(子正), 號 경헌(敬軒), 毅庵柳麟錫門人 文學이 精粹함, 父 弘錫

지원영(池源永 : 1872~1906) 字 사원(士遠), 號 회실(晦室), 省齋, 毅庵 兩先生 門下生, 父 弘溵

지학수(池學洙 : 1811~1878) 字 경박(景博), 號 춘사(春沙), 文章이 高潔함, 癸酉譜 文獻誌 刊行, 父 竹崖 錫胤

지근수(池近洙 : 1816~1884) 字 백평(伯平), 文藝가 뛰어났음 文獻誌 編纂, 父 通德郞 錫疇

지영원(池永源 : 1824~?) 字 명숙(明淑), 典雅한 문장으로 一門의 師表됨, 父 益元

지해진(池海鎭 : 1805~1853) 字 중연(仲淵), 府院君山所守護문제로 昌平流配刑 三年으로 孝行이 出衆했음, 父 啓洛

지발호(池潑浩 : 1825~?) 字 사선(士善), 孝養父母하고 父病에 斷指給血한 孝子임, 父 相晩

지우영(池佑永 : 1855~1904) 字 자천(自天), 號 호정(湖庭), 養親奉先에 정성을 다함, 父 弘錫

지기휴(池基休 : 1727~1812) 字 수량(秀亮), 號 운계(雲溪), 敎官 以孝로 禮曺叅判에 이름, 父 海貞

지동채(池東彩 : 1797~?) 字 춘여(春汝), 父病에 斷指 贈戶曺叅議, 父 敎官 雲成

지윤주(池胤周 : 1829~1905) 號 동은(東隱), 母親奉養에 극진 旌閭 贈嘉義, 父 贈叅判 光春

지익상(池翼相 : 1857~1893) 字 성재(聖載), 父母奉養에 誠孝를 다함, 父 敦永

지세영(池世榮 : 1798~1880) 字 윤심(允深), 號 성옹(誠翁), 孝誠이 至極 旌門, 父 副護軍 興龍

지서룡(池瑞龍 : 1808~1868) 字 운겸(雲兼), 忠孝로 一貫함 副護軍, 父 元遜

지광룡(池光龍 : 1831~1896) 字 영직(永直), 號 유천(柳川), 五衛將 孝行著名, 父 嘉善 元東

지현식(池顯植 : 1838~1889) 字 광서(光瑞), 號 명강(明江), 奉先治山에 誠孝를 다함, 父 處士 宗源

지창영(池昌榮 : 1837~1868) 孝行으로 著名 事載湖南 三綱錄, 父 達灝

지동욱(池東郁 : 1843~1926) 字 문재(文哉), 號 국포(菊圃), 孝文으로 이름남, 父 通政 千源

지지묵(池志黙 : 1859~1921) 字 계삼(季三), 號 청련(靑蓮), 至極한 孝誠으로 士林呈文, 父 嘉善 正胤

지학원(池學源 : 1838~1918) 字 시백(時伯), 號 행암(杏庵), 文行이 出衆하고 德行이 醇正함, 父 海鎭

지석린(池錫鱗 : 1839~1911) 字 여천(汝天), 號 인제(認齊), 程朱學에 潛心 著述多有, 父 德潤

지득원(池得源 : 1841~1898) 字 덕신(德身), 號 낙헌(樂軒), 文雅가 高潔하고 醇正함, 父 厚鎭

지동순(池東巡 : 1854~1923) 字 삼여(三汝), 武科 同知中樞府事 兼 五衛將, 父 贈通政 冕洙

지일원(池一源 : 1848~1931) 字 성순(聖純), 號 송서(松西), 文章이 뛰어나 대들보와 같다고 칭송, 父 常鎭

지윤상(池潤相 : 1878~1954) 字 범초(範初), 號 소송(小松), 孝文에 能한 丹陽禮宗으로 일컬음, 父 학永

지철상(池喆相 : 1879~1904) 字 중길(重吉), 號 모하(慕下), 性理學에 潛心成就하였음, 父 郁永

지성상(池性相 : 1888~1960) 字 도여(道汝), 號 만주(晩州), 文章製述에 能通 甲午譜修纂, 父 佑永

지병식(池秉植 : 1861~1928) 字 명심(命心), 號 錦湖, 文行, 經術로 著名 奉先治道에 誠孝를 다함, 父 大源

지면식(池勉植 : 1862~1935) 字 사행(士行), 號 긍재(肯齋), 文行, 經術로 著名 丙寅譜刊行, 父 得源

지창식(池昌植 : 1873~1951) 字 영일(永一), 號 금파(錦坡), 文學 禮法에 밝음 遺稿가 있음, 父 學源

지헌하(池憲夏 : 1865~1934) 字 치용(致用), 號 희암(希菴), 勉菴 崔益鉉 門人 遺稿있음, 父 雄彛

지헌영(池憲英 : 1911~1981) 字 낙현(樂賢), 號 장암(藏庵), 國文學者 忠南大敎授, 父 永植

지헌만(池憲萬 : 1914~1983) 號 의당(毅堂), 文章이 뛰어나 碑文 多述함, 奉先事業에 헌신, 父 秉植

지재우(池載鄅 : 1901~1977) 字 여옥(汝玉), 號 翠松, 製述에 能하여 各種碑文多述, 性品이 高潔함, 父 俊夏

지윤재(池允載 : 1862~1944) 字 군건(君健), 號 백초(白憔), 操行이 高潔하고 文藝가 精明, 父 光周

지조(池 潮) 字 신대(信大), 號 정좌(靜坐), 受業于遂菴權文純公尙夏, 父 見師友錄

지재룡(池載龍 : 1868~1955) 字 파일(華一), 號 후담(後潭), 秘書院承旨 奉先事業에 공헌, 父 弼成

지용석(池溶錫 : 1879~1964) 字 원옥(元玉), 號 월계(月溪), 父病五年 극진간호 童蒙敎官, 父 景春

지헌청(池憲淸 : 1880~1968) 字 하응(河應), 號 주산(做山), 事親至孝 一鄕이 칭송, 父 麟植

지돈석(池墩錫 : 1881~1932) 字 연호(連浩), 號 洗心享, 贈通政 親喪에 踰制, 父 志黙

지규재(池奎載 : 1839~1917) 字 문오(文五), 號 삼산(三山), 孝․友․文行으로 稱頌, 父 通訓 煥澤

지갑규(池甲圭 : 1864~1936) 字 형옥(亨玉), 號 죽헌(竹軒), 童蒙敎官 旌閭받음, 父 通政 台夏

지헌종(池憲宗 : 1905~1978) 字 조명(朝溟), 號 송운(松雲), 奉先 事業 台谷贊成事公墓尋奉改築함, 父 浩植

지응현(池應鉉 : 1868~1957) 字 경숙(烱叔), 號 붕남(鵬南), 奉先 지극 秉天祠建立 先祖配享, 父 通政 奎載

지귀연(池龜沇 : 1872~1946) 字 낙현(洛賢), 號 각호(角湖), 孝誠이 至極함, 父 聖欽

지의현(池毅鉉 : 1910~1981) 字 성보(成甫), 號 월촌(月村), 孝友篤敬으로 鄕黨에 칭송, 父 翰圭

지동환(池東煥 : 1821~1898) 字 성익(聖益), 忠城君 旌閭를 받음, 父 相淳

지승규(池勝圭 : 1823~?) 字 승문(勝文), 號 계은(溪隱), 孝行으로 贈通政大夫, 父 雲夏

지여문(池汝汶) 丙子亂에 父親을 보호하다 俱歿 旌閭

지시정(池時淨) 字 화숙(華叔), 父病斫指進血 及喪以毁卒 婦人曰子死於孝, 婦不當死於烈乎 遂自裁 事聞 命旌孝

■ 孝 烈 婦

지달원처광산김씨(池達遠妻光山金氏:1587~1636) 丙子亂에 淸虜에 쫓겨 江華에서 二女와 投海死함

지채린처김해김씨(池采鱗妻金海金氏) 夫君歿에 卽日下從하니 命㫌함

지석구처김해김씨(池錫耈妻金海金氏:1725~1773) 夫君三年喪을 마치고 下從함

지병수처전주이씨(池秉洙妻全州李氏:1810~1875) 夫病에 단지수혈과 자기살을 베여먹인 烈婦임

지가천처전주이씨(池嘉天妻全州李氏) 夫病에 斷指 수혈과 다리의 살을 베여먹임

지해운처전주이씨(池海運妻全州李氏:1760~?) 夫君歿에 卽日 下從하니 士林이 呈文하였음

지영하처밀양박씨(池永夏妻密陽朴氏:1824~?) 夫病에 斷指 注血한 烈婦임

지분이처라주라씨(池奮彛妻羅州羅氏:1841~1860) 夫君 歿에 삼일 후 下從함

지경춘처밀양박씨(池景春妻密陽朴氏:1866~?) 孝婦, 烈女로 士林이 表彰함

지헌주처진주강씨(池憲柱妻晉州姜氏) 夫病에 斷指注血 命㫌함

지기석처김해김씨(池淇錫妻金海金氏:1867~1915) 孝婦 烈女로 湖南三綱錄에 등재됨

지대진처안동권씨(池大鎭妻安東權氏:1866~1950) 孝養舅姑와 夫病에 斷指注血로 蘇生하니 士林이 稱頌함

지석규처진주강씨(池錫奎妻晉州姜氏:1897~1957) 夫君歿에 下從不可로 父母奉養과 幼子 育成으로 칭송

지영숙처경주최씨(池永淑妻慶州崔氏) 媤母病에 자기살을 구어드리어 士林이 呈文함

지형권처전주이씨(池衡權妻全州李氏:1856~?) 夫病斷指注血 士林 呈文함

지주재처진양강씨(池珠載妻晉陽姜氏:1876~1959) 孝烈로 칭송이 있어 鄕校에서 呈文함

지영순처광주이씨(池永淳妻廣州李氏:1845~?) 媤母病에 便을 맛보며 看護하여 士林이 立碑称頌함

지경옥처김해김씨(池景玉妻金海金氏:1867~?) 夫病에 9年간 至誠으로 기도와 靈藥으로 精誠을 다함

지의현처경주김씨(池毅鉉妻慶州金氏:1917~1997) 孝婦로 鄕黨이 称頌, 行錄이 있음

지반룡처경주김씨(池班龍妻慶州金氏) 媤父母 奉養하고 夫君따라 下從한 烈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