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상주주씨시조(尙州周氏),주유(周瑜),상주주씨유래

작성일 : 2017-05-19 14:52 수정일 : 2018-02-13 15:48

상주주씨(尙州周氏)

주씨는 고대(古代) 중국(中國) 헌원(軒轅)의 후예(後裔) 인 무왕(武王)이 기원전 1134년 주(周)나라를 다스려 오다가 그의 37대손 난왕(난王)이 진(秦)나라에 멸망하여 후손(後孫)들이 나라이름인 주(周)자를 성(姓)으로 삼아 연원(淵源)을 이었다고 한다.


시조 및 상주주씨유래(본관)

상주주씨시조(始祖)주유(周瑜)

상주주씨(尙州周氏)는 선세(先世)가 상주(尙州)에 누대(屢代)에 세거(世居)해 왔다고 한다.

고려(高麗)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길재(吉再)김자수(金自粹)등과 함께 벼슬을 마다하고 초계현(草溪縣)에 은거(隱居)하여 세칭(世稱) 포번삼절사(逋幡三節士)로 불리웠던 진사(進士) 주유(周瑜)를 시조(始祖)로 선대(先代)가 세거(世居)해온 상주(尙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손자(孫子)인 참의공(參議公) 장손(長孫)이 안동목사(安東牧使) 권우(權虞)의 따님을 취처(娶妻)하여 아들 셋을 두었으니 맞이는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문좌(文佐)요 다음은 호군(護軍)이며 끝이 이조참판(吏曹參判) 문보(文보)이다 참판공이 몸을 딱고 복(福)을 쌓아 아들 둘을 두었으니 첫째는 부정공(副正公)세곤(世곤)이요 끝이 세붕(世鵬)인데 현달(顯達)하여 1522년 (中宗17)생원(生員)으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세붕(世鵬)은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한후 명종(明宗)때 부제학(副提學),호조참판(戶曹參判)을 거처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일찌기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나갔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書院)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워 흥학위도(興學爲道)에 진력(盡力)했다.

이 후 노비(奴婢)전결(田結)과 함께 업적에 걸맞는 기페지학소이수지(旣廢之學紹而修之=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딱게 했음)란 내용에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명명으로 사액(賜額)됨으로 하여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始初)가되었다.

특히 그는 시문(詩文)이 뛰어나 태평곡(太平曲) 육현가(六賢歌) 장가(長歌) 단가(短歌) 군자가 (君子歌)등 8수(首)가 있으며 저서(著書)로는 심도설(心圖說)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죽계지(竹溪志) 무릉집(武陵集)을 남겼으며 일생을 청렴하게 살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었다.

또한 문좌(文佐)의 손자(孫子)요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閏德)의 외손자(外孫子)인 이(怡)는 문과급제(明宗元年1546丙午)하여 내 외직을 두루 거치고 명(明)나라 사신 중 서장관(書壯官)으로 갔을 때 세종황제(世宗皇帝=明나라)께서 분송(盆松)을 보고 시(詩)를 지어라 명(命)하자 즉석에서 분송시를 지었다.

크게 탄복하여 그 후 황제로부터 직불용(直不容:시의 끝구절=정직한 것이 용납(容納)되지 않음을 일컬음)선생이라고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세붕(世鵬)의 아들인 박(博)은 이퇴계(李退溪)의 문하생(門下生)으로 선조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弘文館),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館)으로 명종실록에 참여(參與)하였고 조야(朝野)에 명성이 있었다.

박(博)의 증손(曾孫)인 맹헌(孟獻)은 숙종(肅宗)때 현사(賢士)로써 당대의 석학 허목(許穆)과 조임도(趙任道)의 문하인으로 과거를 일삼지 않고 도학(道學)과 덕성(德誠)에 독실(篤實)하여 선비들을 감동시켰으며 사림(士林)에 추존으로 덕연별원(德淵別院)에 칠원(漆原縣) 오현(五賢)으로 배향되었다

이후 영조무신(英祖戊申)년에 의병장(義兵將) 재성(宰成)은 이인좌(李麟佐) 난 때 충의(忠義)로서 국은(國恩)에 보답 하고자 군수품(軍需品)및 군량미(軍糧米)삼백석과 의병을 모집하여 관군본부(官軍本部)에 도착하니 황선(黃璿)관찰사(觀察使)가 감복(感服)하여 삼천여명의 군사를 배속(配屬)시켜 분치령(分峙嶺)의 반군(叛軍)을 차단(遮斷)했다.

난(亂)이 평정(平定)된후 양무원종훈 1등으로 등록(登錄)되고 세 번이나 관직(官職)을 재수하였으나 사양하고 학문연구(學問硏究)에 전심(專心)했다.

저서(著書)로 거가요범(居家要範) 용학강의(庸學講義) 경의집록(經義輯錄)이 세전(世傳)한다.

근세(近世)에 민족의 은인(恩人)인 한글학자 시경(時經)은 재질이 있어 이회종(李會鐘)에게 한문을 배웠고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한 후 일생(一生)을 오로지 한글연구(硏究)에 몸바쳐 국문법과 맞춤법을 만들고 가다듬어 제자(弟子)들을 길러내어 후일 조선어학회(한글學會)를 결성(結成) 하는등 뚜렸한 국어운동(國語運動)의 선구자(先驅者)적 업적(業績)을 남겼다


상주주씨 인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22,909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