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평산조씨시조(平山趙氏),조응선(趙應善),평산조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5 21:45 수정일 : 2019-02-12 10:5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평산조씨(平山趙氏)의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미상(未祥)하며, 시조(始祖) 조응선(趙應善)은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왕에게 직간(直諫)하다가 평산(平山)으로 유배(流配)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계대(系代)를 알 수 없으므로 후손들은 시조의 배소지인 평산(平山)을 본관(本貫)으로 삼고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낸 조충백(趙忠白)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산(平山)은 황해도(黃海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화실(多和悉)이었는데 통일신라(統一新羅)의 경덕왕(景德王)이 영풍(永豊)으로 고쳤으며, 고려 초에 평주(平州)로 하였고 1272년(원종 13)에 평산으로 바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고종(高宗) 때 군(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충백(忠白)의 아들 복린(馥麟)이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지냈고, 후손 발(發)의 아들 호문(好問)은 1480년(성종 11)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그 후 평산 조씨는 많은 학자(學者)를 배출하여 가문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산조씨(平山趙氏)는 남한(南韓)에 3,19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평산조씨조상인물 

조복린(趙馥麟) 조선조(朝鮮朝)에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하였다.

조숙영(趙淑永) 호(號)는 죽오(竹塢). 조선(朝鮮) 때 덕망(德望) 높은 학자(學者)였다.

조광헌(趙匡憲) 호(號)는 정균(庭筠). 조선조(朝鮮朝)에 학행(學行)이 뛰어난 학자였다.

조호문(趙好問)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