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5-12 17:39 수정일 : 2019-02-11 12:5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함평정씨(咸平鄭氏)는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정언겸(鄭彦謙)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언겸이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亂)이 일어나자 모평(牟平)에 은거(隱居)하여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함평(咸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全羅南道) 서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2현(縣)의 합명(合名)이다. 함풍현(咸豊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굴내현(屈乃縣)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함풍현으로 고쳤고, 모평현(牟平縣)은 다지현(多只縣)을 다기현(多岐縣)으로 개칭하고 무안군(務安郡)에 이속되었다가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모평현(牟平縣)으로 하였다. 그후 1409년(태종 9) 함풍현과 모평현을 병합하여 함평(咸平)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언겸(彦謙)의 아들 형(炯)이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손자 현수(賢守)는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영풍부원군(永豊府院君)에 봉해져 훌륭한 함평 정씨 가문을 빛냈다.
그 밖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낸 신량(臣良)과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한 공민(恭敏)이 유명했으며, 함(緘)은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함성군(咸城君)에 봉군되어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을룡(乙龍)과 함께 고려에서 가문을 빛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지낸 지유(知遊)와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한 구명(耈明)이 선조(先祖)의 뒤를 이어 나라에 충성하고 명문인 함평 정씨를 더욱 유명하게 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평정씨(咸平鄭氏)는 남한(南韓)에 6,3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함평정씨조상인물
정형(鄭 炯)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정현수(鄭賢守) 고려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영풍부원군(永豊府院君)에 봉(封)하여졌다.
정신량(鄭臣良) 고려(高麗) 때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정함(鄭 緘) 고려조(高麗朝)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함성군(咸城君)에 봉하여졌다.
정공민(鄭恭敏) 고려(高麗)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정을룡(鄭乙龍)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고려 때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정안의(鄭安義) 고려조(高麗朝)에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정지유(鄭知遊) 조선조(朝鮮朝)에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지냈다.
정구명(鄭耈明) 1404년(태종 4)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선공감 판관(繕工監判官)을 거쳐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