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하음전씨시조(河陰田氏),전균(田畇)

작성일 : 2017-05-10 17:17 수정일 : 2018-04-07 16:5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하음전씨(河陰田氏)의 시조(始祖) 전균(田 畇)은 담양 전씨(潭陽田氏)인 충원공(忠元公) 득시(得時)의 후손(後孫)으로 1447년(세종 29)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父事) 를 거쳐 1452년(문종 2)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父事)가 되었고,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공(功)을 세워 수충위사협찬 정난 2등 공신(輸忠衛社協贊靖難二等功臣)에 책록(策錄)되고 강천군(江川君)에 봉(封) 해졌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익2등공신(左翼二等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이어 판내시부사(判內侍父事)에 승진(陞進), 하음군(河陰君)에 개봉(改封)되고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담양 전씨(潭陽田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균(畇)을 시조(始祖)로 삼고 하음(河陰)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하음(河陰)은 경기도(京畿道) 강화군(江華郡)에 있었던 옛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때 동음내현(冬音奈縣) 또는 아음현(芽音縣)으로 고쳐 개성(開城)에 속하였으나, 1413년(조선 태종 13) 강화군(江華郡)에 이속되어 현(縣)을 폐하고 강화군에 병합되었다.


인 구

하음 전씨는 1930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평남 중화군 수산면 건천리(平南中和郡 水山面 乾川里)에 39 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65가구, 1,08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음전씨는 남한에 1,85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