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부여전씨 시조(扶餘全氏),전권(全綣),부여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9 22:06 수정일 : 2019-02-08 15:3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부여(扶餘)는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소부리(所夫里 : 일명 泗沘)라 불렀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660년(의자왕 20)에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부여 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751년(신라 경덕왕 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이라고 하었다.

부여전씨(扶餘全氏)의 관조(貫祖)는 도시조(都始祖) 전섭(全 聶 : 환성군)의 33세손으로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 공조정랑(工曹正郞)을 지내고,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추증된 전권(全綣)이다. 그가 부여(扶餘)에 자시(自是)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부여(扶餘)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권(綣)의 아들 신지(信之)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병마 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거쳐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손자(孫子) 오륜(五倫)은 성종(成宗)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낸 충효(忠孝)와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대천(大天)의 아들수화(秀華)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고 흥빈(興彬)과 호경(好景)․언신(彦信) 등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朝鮮朝)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에오른 천추(千秋)와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한 덕묵(悳黙)은 부여 전씨(扶餘全氏)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여전씨(扶餘全氏)는 남한(南韓)에 1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부여전씨조상인물

전신지(全信之)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하고, 호조 참의(戶曹參議)․의금부사(義禁府事)에 추종되었다.

전오륜(全五倫)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정(訓鍊院正)․회령 부사(會寧府使)를 역임하였다.

전충효(全忠孝)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전충성(全忠誠) 조선(朝鮮)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전덕무(全德懋) 조선(朝鮮)에서 통덕랑(通德郞)으로 정릉참봉(定陵參奉)을 지냈다.

전공무(全公懋) 조선조(朝鮮朝)에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전응성(全應誠) 조선(朝鮮) 때 훈련원 참군(訓鍊院參軍)을 지냈다.

전기(全 璣) 조선(朝鮮)에서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첨사(僉使)를 역임했다.

전백(全 伯)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전장(全 璋)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전대천(全大天)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전수화(全秀華)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전흥빈(全興彬) 자(字)는 성극(聖極).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전승립(全勝立) 조선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