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해남이씨시조(海南李氏),이지형(李之亨),해남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6 14:56 수정일 : 2018-07-23 14:2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해남이씨(海南李氏)의 시조(始祖)인 이지형(李之亨)은 고려(高麗) 때 태자소경(太子少卿)을 지냈으며, 지형(之亨)의 선계(先系)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확인할 수 없다. 뒤에 후손들은 해남(海南)에 정착하여 세거(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해남(海南)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해남(海南)은 전라남도(全羅南道) 남서부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원래 백제시대의 색금현(塞琴縣)인데, 통일 신라시대에 침명(浸溟)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시대에 해남(海南)으로 고쳐 영암군(靈岩郡)에 소속시켰다가, 1409년(태종 9)에 진도현(珍島縣)과 합하여 해진현(海珍縣)이라 했다. 1437년(세종 19)에는 현감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현(縣)이 폐지되고 해남군(海南郡)이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지형(之亨)의 아들 양익(良益)은 고려(高麗) 때 도진시사(都津寺事)를 지냈으며, 손자 서신(徐信)은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를, 증손(曾孫) 종진(宗鎭)은 도사(都事)를 역임하여 당대에 뛰어났다.

그밖에 무관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오른 지돈(之敦)은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오른 국문(國文),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욱(旭)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남이씨(海南李氏)는 남한(南韓)에 278가구, 8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해남이씨조상인물

이양익(李良益) 자(字)는 자청(子淸). 고려(高麗) 때 도진시사(都津寺事)를 역임하였다.

이서신(李叙信) 자(字)는 중덕(中德).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였다.

이종진(李宗鎭) 자(字)는 세진(世晋).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이충언(李忠彦) 조선 때 부윤(府尹)을 역임하였다.

이수익(李壽翼) 자(字)는 경부(景夫).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인정(李仁貞) 자(字)는 인초(寅初). 조선 때 도사(都事)를 지냈다.

이계산(李季山) 조선조(朝鮮朝)에 해남군(海南君)에 봉해졌다.

이빈(李 濱)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이지돈(李之敦) 자(字)는 가봉(可封).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이국문(李國文) 자(字)는 일영(日榮). 조선(朝鮮) 시대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이국경(李國卿) 자(字)는 선지(善之).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욱(李 旭) 자(字)는 명중(明仲).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이성식(李成植) 자(字)는 윤원(允元). 조선(朝鮮) 때 부승지(副承旨)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