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하음이씨시조(河陰李氏),이영(李英)

작성일 : 2017-05-06 10:54 수정일 : 2018-04-08 14:3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하음이씨(河陰李氏)는 여흥(驪興 : 여주) 이씨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둘째 아들 이영(李英)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영(英)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내시(內侍)와 정용낭장(精勇郎將)을 지내고 여흥 이씨(驪興李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하음(河陰)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하음(河陰)은 경기도(京畿道) 강화군(江華郡)에 있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동음내현(冬音奈縣) 또는 아음현(芽音縣)으로 불리우다가 통일신라 때 호음현(沍音縣)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에 속했다. 고려조에 하음현(河陰縣)으로 고쳐 개성(開城)에 속하였으나, 1413년(조선 태종 13) 강화군(江華郡)에 이속되어 현(縣)을 폐하고 강화군에 병합되었다.

하음(河陰)과 동향인 강화 이씨(江華李氏)도 여흥 이씨에서 분적(分籍)되었고,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가 강화 이씨의 족보(族譜)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하음이씨는 강화 이씨에 속한 한 줄기의 파(派)로 추정되나 상계 소목(上系昭穆)을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정확히 상고(詳考)하지 못한다.


인 구

근대에 와서 하음 이씨는 충북 영동(忠北永同) 지방에 25가구가 집중 세거하고 있었으며, 2015년 통계청인구조사 결과에는 남한(南韓)에 1,71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