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5-06 10:24 수정일 : 2018-07-23 11:5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평산이씨(平山李氏)의 원조(遠祖) 이부명(李敷明)은 중국 당(唐)나라 설인귀(薛仁貴)가 보낸 8세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산(平山)에 들어와 백성들에게 예법을 가르쳤고,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그러나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낸 후손 이자용(李子庸)에 이르기까지 세계(世系)가 불분명하므로 부명을 원조로, 자용을 일세조로 삼고 선조(先祖)가 정착 세거(定着世居)한 평산(平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산(平山)은 황해도(黃海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화실(多和悉)이었던 것을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영풍(永豊)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초에 평주(平州)로 하였고 1272년(원종 13)에 평산으로 바꿔 도후부(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고종(高宗) 때 군(郡)으로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자용(子庸)의 아들 빈(彬)은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고, 빈(彬)의 손자 천위(天緯)는 조선 때 우찬성(右贊成)을, 천경(天經)은 관찰사(觀察使)를 지내 가문을 빛냈다.
또한 판서(判書)를 역임한 천위(天緯)의 아들 지하(支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석곤(錫坤)과 돈령부사(敦寧府使)를 지낸 창식(昌植),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계남(繼男) 등이 평산이씨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산이씨(平山李氏)는 남한(南韓)에 3,27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평산이씨조상인물
이빈(李 彬) 고려(高麗) 때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다.
이수헌(李壽巘)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천위(李天緯) 조선조에 우찬성(右贊成)을 역임하였다.
이천경(李天經) 조선에서 관찰사(觀察使)를역임하였다.
이지하(李支廈) 조선 때 판서(判書)를 지냈다.
이희문(李希文) 자(字)는 득윤(得胤). 조선 때 판결사(判決事)에 올랐다.
이원절(李元梲) 자(字)는 이경(爾擎). 조선시대에 참의(參議)를 지냈다.
이덕윤(李德潤) 자(字)는 찬오(贊五). 조선(朝鮮) 때 참찬관(參贊官)에 이르렀다.
이석곤(李錫坤) 자(字)는 윤후(允厚).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창식(李昌植) 자(字)는 윤달(允達). 조선(朝鮮) 때 돈령부사(敦寧府事)를 지냈다.
이종식(李宗植) 자(字)는 동선(東善), 호(號)는 초사(初史).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계남(李繼男) 자(字)는 계익(繼益).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승일(李承逸) 자(字)는 군욱(君郁).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이문옥(李文玉) 자(字)는 관옥(寬玉). 조선조에 의관(議官)을 지냈다.
이익상(李翼相) 자(字)는 덕장(德章). 1732년(영조 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이조 좌랑(吏曹左郞)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