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위이씨시조(振威李氏),이방(李方),진위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0:52 수정일 : 2018-07-20 10:4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위이씨(振威李氏)의 시조(始組)는 태자태보(太子太保)를 지낸 이방(李方)이다. 방(方)의 5세손 자영(自英)은 고려조(高麗朝)에서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냈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진위군(振威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진위(振威)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위(振威)는 경기도 평택군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의 부산(釜山 : 古淵達部曲․釜山․松村活達縣)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진위현으로 고치고, 1398년(조선 태조 7)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 충청남도 평택군에 폐합되어 그 일부지역은 진위면(振威面)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자영(自英)의 아들 중육(仲育)이 고려에서 태사(太師)를 역임했고, 손자 옹(邕)이 밀직사(密直使)를 지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지(至)가 승지(承旨)를 지냈으며, 참군(參軍)을 지낸 종(鐘), 좌랑(佐郞)을 지낸 즙(檝) 등이 가문을 빛냈다.

그밖에 조선(朝鮮) 때 유면했던 의원(醫員) 경화(景華)는 일찌기 송시열(宋時烈)의 문화에서 길을 배워 생원(生員)이 되었고, (經史百家)에 정통하여 진위이씨(振威李氏)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위이씨(振威李氏)는 남한(南韓)에 4,90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진위이씨조상인물

이인서(李仁瑞) 자(字)는 춘원(春元), 호(號)는 송촌(松村)․호천용(好川翁). 고려조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이임(李 林) 고려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이식(李 植) 고려(高麗)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다.

이수(李 樹) 고려조(高麗朝)에 전법총랑(典法摠郞)․ 예빈시승(禮賓寺丞)․ 동정(同正) 등을 역임하였다.

이자영(李自英) 고려 때 검교장군(檢校將軍)․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내고, 진위군(振威君)에 봉해졌다.

이중육(李仲育) 고려(高麗) 때 태자 태사(太子太師)를 역임하였다.

이옹(李 邕) 자(字)는 화경(和卿), 호(號)는 송은(松隱). 고려에서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계(李 啓) 자(字)는 개여(開汝), 고려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이지(李 至) 자(字)는 지격(至格), 호(號)는 퇴암(退菴). 조선조에 승지(承旨)를 지냈다.

이전(李 荃) 조선조에서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이위(李 渭) 조선 때 판서(判書)를 지냈다.

이지서(李之湑) 자(字)는 청지(淸之), 호(號)는 오재(梧齋). 조선 때 숭정대부(崇政大夫)로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청성군(靑城君)에 봉해졌다.

이종(李 鐘) 조선(朝鮮) 때 참군(參軍)을 지냈다.

이휴(李 畦) 자(字)는 덕수(德秀).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이욱(李 郁) 자(字)는 자문(子文). 조선조(朝鮮朝)에 교수(敎授)를 역임하였다.

이즙(李 檝) 조선 때 좌랑(佐郞)을 지냈다.

이경화(李景華) 자(字)는 여하(汝夏), 호(號)는 풍계(楓溪). 1660년(현종 1) 생원(生員)이 되고 1682년(숙종 8) 공홍도(公洪道)의 유생들과 함께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소청(疏請)했다. 침구(鍼灸)에 능했고 경사백가(經史百家)에도 정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