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재령이씨(載寧李氏),재령이씨시조,이우칭,재령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4 15:37 수정일 : 2018-08-13 11:31

재령이씨시조 및 재령이씨유래(연원)

재령이씨는 경주이씨에서 분관되었다.

비조(鼻祖․원시조)는 이알평(李謁平)공이시고, 자는 천서, 호는 표암(瓢巖) 시호는 문선이고 신라를 건군하여 개국좌명공신으로 녹훈되시고, 후에 은렬왕으로 추봉되셨다.

신라 3대 유리왕 때에 이씨로 사성(賜姓)받아 관향(貫鄕)을 경주로 連綿하고 나아가 차성(車城), 우계(羽溪), 합천(陜川), 원주(原州), 아산(牙山), 장수(長水) 그리고 우리 재령(載寧) 등으로 분관(分貫)되어 화수지의(花樹之誼)를 더욱 다지는 가운데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번창하고 있다.

36세손 이거명(李居明)공은 벼슬이 소판(蘇判)이고 그분의 손자 이금서(李金書)공은 三中功臣 中原太守이며 계림군에 封君되고 경순왕의 駙馬이다. 계림군의 증손자가 고려조의 사간 이주복(李周復)공이다.

42세손 이우칭(李禹偁)공은 司諫공의 둘째 아들이고, 고려 성종 년(981-997)에 보조공신 문하시중으로 승진, 황해도 재령을 녹읍으로 받아 재령君으로 封君되니, 이로 인해 관향을 재령으로 경주와 별관한 재령이씨의 득관조(得貫祖)이시.

묘소는 황해도 재령군 서어산 갑좌경향이고 평산군과 경계지점이다.

밀양 경덕사(景德詞)와 합천 경원사(慶源詞)에 배향하였다.

재령군의 15세손 순성 보조공신 상장군 이소봉(李小鳳)공은 영동정 이근인공의 아들로서 시효는 문익(文益)이고 재령부원군(載寧府院君)으로 봉군되고 공민왕의 딸 정숙(貞淑)공주와 혼인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얻어 비로소 세대를 계대하게 되니 후손들이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맏아들 李日詳공은 호가 草堂이고, 保勝中浪將을 역임하시고, 후손들이 경기의 김포와 경북의 청도지방에 세계를 이루고 있다.

둘째아들 李日善公은 학덕과 지절(志節)이 높았으며, 司宰令으로 봉직 중이던 13949월에 공민왕이 불행하게도 중국 원나라와 내통하고 있던 간신(奸臣) 최만생 등에게 시해되는 대정변이 일어나 고려의 국운이 극도로 쇠진함을 보고는 우왕년간(1375-1388)에 가족(아들 신(), (), (), (), (), ())을 거느리고 松都를 떠나 남쪽 밀양부의 명산 덕대산 기슭의 조음리에 定着하였으며 최초의 영남 재령인이 되시고 후에 宗簿寺正에 증직되었다.

敍上과 같은 歷程으로 우리 李氏는 재령으로 분관(分貫)以來로 고려조선을 거치는 近千余年으로 이어오는 가운데 一族京鄕各地17宗派分布되어 번창하고, 그간에 節士, 碩儒, 淸宦이 세세로 相傳하고 있으니 世人들이 崇儒學德家門이라고 일컬어 오고 있다.


本 貫 地 沿 革

황해도(黃海道) 재령(載寧)은 본래 고구려의 식성군(息城郡)인데 신라 경덕왕 때 중반(重盤)으로, 고려 초에는 안릉(安陵), 한홀(漢忽), 안주(安州)로 개칭하고, 성종 14년에 防禦使를 두었고, 현종 때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하였으며, 고종 때는 지령(載寧)으로 고쳐 현()으로 승격시켰다.

조선조 태조 6년 풍주(豊州) 소속인 三支縣을 병합하였고, 태종 15년에는 지군수(知郡事)로 승격되었다.

주요 성씨로는 , , , , , , , 씨 등이 있었다.


역대인물-재령이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

이윤홍(李潤弘) : 문하시랑(門下侍郞) 역임 삼중공신 中原太守이고, 계림君으로 封君된 敬順王의 사위 李金書公의 아들이다.
이승훈(李承訓)
: 병정(兵正) 역임
이주복(李周復)
: 사간(司諫) 역임
이원영(李元英)
: 공부상서(工部尙書) 역임
이근인(李根仁)
: 영동정(令同正) 역임
이소봉(
李小鳳) : 순성 보조공신, 광정대부 상장군 역임 호는 문익(文益), 재령부원군으로 봉군되고 공민왕의 부마(駙馬)이시다.
이일상(李日詳)
: 호는 초당 보승중랑장(保勝中浪將) 역임
이천용(李天龍)
: 호는 동계, 훈련원사 역임, 증병조판서
이혜(李  惠)
: 호 단활재  지보주사(군수)
이승(李  勝)
: 예조참의 역임
이오복(李五福)
: 남양부사
이일선(李日善)
: 사재령(司宰令) 역임, 학덕과 지절(志節)과 충절(忠節)이 높고 우왕 년간(1375~12389)에 개성에서 밀양으로 南下하신 입행조
이신(李  申)
: 자는 신지(伸之), 호는 계은, 유일로 사현부지평 포은 정몽주의 문인, 여말 역성현병의 주모자를 탄핵하다가 역으로 박해를 받아 장독으로 순절한 충신이고, 밀양오현의 수장이고, 조선태종의 효자정려가 있다. (경남문화재 281호)
이술(李  戌)
: 공양왕조의 절신(節臣)  사정(司正) 역임
이축(李  丑)
: 공양왕조의 절신(節臣)  생원(生員) 역임
이오(李  午)
: 호는 모은(茅隱), 성균관 진사, 포은 정몽주의 문인, 여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역성혁명으로 불취, 고려가 붕괴되니 두문동에서 망복수의(罔僕守義)를 다짐하고 南下하여 함안 모곡에 은거,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다. 함안 인구서원, 감사 문구서원에 향사, 증 병조참의, 문집 2권이 있다.
이유(李  酉)
: 공양왕조의 절신, 학덕으로 처사이다.


조선시대 인물

이개지(李介智) : (1415-1487) 성품이 온유진순(溫柔眞淳)하였고. 시와 예에 능했다. 큰아들 근재공의 현달로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

이영중(李榮中) : 감사(監司) 역임(유치적비)

이영숙(李永淑):판관 역임

이영원(李英元) : 군수(郡守)

이계손(李綿孫) : 군수(郡守)

이덕윤(李德潤) : 문과급제 이조정랑

이은보(李殷甫) : 군수(郡守)

이행(李 行) : 부사(府使)

이기(李 綺):판윤(判尹)

이만지(李萬枝):현감(縣監)

이맹현(李孟賢) : (1436-1487). 자는 사성(師聖), 호는 근제(親齋)이다. 세조 6년(1460)에 대과(大科)에 장원 하니 그 의용(儀容)과 문화(文華)를 世祖께서 총애(龍愛)하시고, 경연(經筵)에 임시케하고 太祖의 외손녀(副正 윤호의 딸)과 혼인을 시켜 저택(邸宅)을 하사하였다.

세조 12년에 발령시에 발탁되므로 문명(文名)을 드높였고, 홍 · 예문관 부제학(副提學)과 의직으로 황해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이조참판에 오르는 등 화관현직(華官顯職을 두루 거쳤다.

자녀 9남매에 분급(分給)한 분재기(分財記)가 보물 876호로 지정 (指定)되었고 문집 2권이 전한다. 진주 청천사(淸JII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이중현(李仲賢) : (1449-1508) 자는 준성 (違聖), 호는 율간(栗潤)이다. 성종 7년에 문과급제 예조참의와 홍문관 부제학(弘文館 副提學) 역임, 다시 영해, 양양 부사 역임. 증 가선대부, 실기 2권이 있다.

이계현(李季賢) : 자는 술성(述聖), 학덕이 높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고 학행으로 장예원 사의로 천거

이상(李 瑞) : 자는 정옥(廷玉), 1486년에 문과급제. 교리(校理)를 역임.

이위(李 琦) : 자는 언도(彦度), 현감(縣監)을 역임

이래(李 珠) : 현감(縣監)을 역임

이종(李 璋) : (1475-1530). 자는 윤향(潤鄕)이고, 현감, 돈녕부판관을 역임.

이애(李 璟) : (1480-1561). 자는 자온(子溫)이다. 判官. 縣令을 역임. 품계는 통정대부이다.

이부 : 시직을 역임.

이무(李 珷) : 호는 덕고(德阜) 문무겸비(文武兼備)하여 경상우도 수군 우후(處侯)를 역임. 원종(原從) 일등공신 책록

이철(李 徹) : (1531-1585). 자는 경숙(敬叔). 진주 목사 역임

이번(李 蕃) : 자는 사영 호는 남계(南溪). 의금부 도사 (都事) 역임, 임란 원종 공신

이대형(李大亨) : (1543-1592) 자는 태래(泰來) 호는 관천(觀川). 임란 때 김해성의 수문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절 판결사(判決事)를 역임, 증 병조참의(兵曹參議), 김해 사층단에 향사(享祀)되었다.

이은려(李殷礪) : 현령 역임.

이익(李 演):호는 양옹, 한성부윤 역임

이함(李 涵) : (1554-1644) 자는 양원(養源), 호는 운악(雲嶽), 의령 현감을 역임, 의령 향교 창건. 임란 때 군량미 공급 등에 크게 공헌.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 유문집 팔공산동고록(八公山同苦錄) 등재

이홍훈(李弘勛) : 자는 백건(伯建), 호는 신촌(新村) 임란 때 창녕 화왕산성에 크게 전공을 세운 임란원종공신 하동 대장사(大壯祠)에 배향되었다.

이정(李 薔) : (1541-1592). 자는 여함(汝函), 호는 모촌(茅村), 조식의 문인. 함안군수 때 소모관으로 큰 공을 세웠다. 현감, 목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 역임. 함안 도림서원, 진주 대각사에 제향하고 있다.

이숙(李 潚) : (1550-1615). 자는 여징(汝澄), 호는 갈촌, 조식의 문인. 1576년에 무과에 급제, 임란 때 의 병장 곽재우 산하에서 영산 등지에서 크게 전공을 세웠다. 군수 현감, 군자감 판관 역임. 함안 도계서원에 배 향되었다. 문집이 있다.

이중영(李重榮):자는 경휘(景輝), 호는 행와(杏窓) 병자호란 때 굴욕적 화의가 이루어지니 통탄하고 용봉 리에 정사를 세우고 학문에 전념, 군자감 첨정(僉正) 역임, 진주 청천사 배향

이중광(李重光) : (1592-1685)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이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굴욕적 화의가 이루어지니 통탄 아안복귀(我安復歸)하여 향리 청원 등에 정사를 세우고 후학 훈육에 전념. 찰방부 호군을 역임하고 가의대부에 증직, 진주 청천사에 배향, 문집 2권이 있다.

이시명(李時明) : (1590-1674) 자는 회숙(晦叔), 호는 석계(石溪) 宣祖 때 생원시에 합격, 강릉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불취하고 석천서당을 세워 경학(經學)에 전념 자손 훈육에 힘써 세칭 칠사림 (七士林) 칠현자(七賢子)를 배출,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석계집 3권이 있다.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 : 석계(石溪) 이시명 (李時明)의 아내이고 퇴계학을 계승(繼承)한 경당장 홍교(張興敎)의 딸이며,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모당(母堂)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로서 문학, 서화, 조각 등 다양한 재질(才質)과 학덕(學德)을 겸비(兼備)한 조선시대 여군자(女君子)로 추앙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서인 규곤시의방(閨憲是議方)을 저술하고 작시(作詩) 몇수(首)와 문집을 전한다. (국가지정 문화 인물)

이미일(李微逸) : (1619-1673)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 (存齋)이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材)가 뛰어나 외조부 장경당(張敬堂)에게 맹자의 수신양성(修身養性)을 이수(履修)받아 구도(求道)에 정진(精進)하였고, 특히 경당선생 (敬堂先生)의 성리학(性理學)을 아우 갈암(葛庵)에게 전수(傳受)하였다.

벼슬은 단념하고 오촌에 명서암(冥樓庵)을 세워 성리학 연구에 정진(精進), 이학(理學) 발전에 크게 공헌(貢獻)을 하였으며, 문집 3권이 있다.

이운용(李雲龍) : (1562-1610) 자는 경견(景見), 호는 동계(東溪) 식성군(息城君)으로 봉군(封君), 宣祖 18年 武科에 及第, 옥포 만호(萬戶)로 재임 때 임진왜란을 맞아 패전(敗戰)하던, 도망가는 주사(主師) 원균(元均)에 항의하여 전라수군 이순신(李舜臣)에게 지원을 요청케 하고, 兩軍이 合同作戰을 하여 옥포, 한산만 해전(海戰)에서 대승(大勝)하여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함으로 임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선봉장으로서 크게 공을 세웠다.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에 임명(任命)되고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녹훈(錄勳).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추증되고, 거영일기(居營日記) 계본등본(啓本騰本)외 실기 2권이 있다. 청도 금호서원과 의령 기강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이현일(李玄逸) : (1627-1704)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 (葛庵).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8세 때에 화왕시(花王詩)를 지어 세인을 놀리게 한 문재(文材)이다. 퇴계 학통을 계승(繼承)한 영남학파의 거두(巨頭)로 이율곡(李栗谷)의 학설을 반대하고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을 지지한 대 성리학자이시다. 학행(學行)으로 사헌부 대사헌(大司憲)등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歷任)하고 「수주관규록(慈州管親錄)」 「홍범행의(洪範行義)」 등 수권의 저서와 문집 29권이 있다. 영덕 인구서원과 진주 청광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이숭일(李腐逸) : (1631-1698) 자는 은중, 호는 항제(恒齊)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지의령사를 지낸 대 성리학자, 문집 4권이 있다.

이세후(李世屋) : (1681-1775)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계(淸溪)이고, 갈암 이현일의 문인으로 병조정랑를 지냈다. 진주 청천사에 제향하고, 문집 2권이 있다.

이재(李 裁) : (1657-1730) 자는 요재, 호는 밀암이고 갈암(葛菴) 이현일의 아들이다. 학행으로 장악원주부 제수 받았으나 불취하고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주서강록간보, 주전집람 등과, 밀암집이 있다.

이만(李 極) : (1669-1734) 자는 군직(君直), 호는 고재(顧齋), 학행으로 영희전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호계서원에서 학문에 전념,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에 밝아 명성을 드높였다. 문집 5권이 있다.

이정욱(李廷郁) : 호는 인의. 壬戰 때 宣祖大王의 평양으로 避難時 호위하여 호성원종 공신에 책록

이몽남(李夢男) : 壬戰 때 선무원종공신에 책록

이운붕(李雲鵬) : 관직은 수문장 임란 선무원종공신 책록

이인(李 仁):관직은 수문장, 만호, 임란 성무원종공신

이백신(李白新) : 자는 택경(澤卿). 호는 향산(鄕山)이다.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祿勳)되고 청도 향안(鄕案)을 창안하여 문향(文鄕)으로 이끌었다. 사림(士林)에서 의적비(懿蹟碑)를 세우고 금호서원에 열향(列享)하였다.

이계종(李維宗):위천 현감

이치(李 徽):현감

이송(李 松) : 군자감정 (軍資監正)

이덕창(李德昌):현감(縣監)

이제현(李濟鉉):현감 부호군

이규일(李圭一):사헌부지평

이두현(李斗鉉):도정 (都正)

이동근(李東根) : 군수. 내금위장

이종근(李宗根) : 항일의병 애족장

이광세(李光世)좌승지 (左承旨)

이현식(李鉉式):정삼품 통정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