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용궁이씨시조(龍宮李氏),이정식(李禎植),용궁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3 15:06 수정일 : 2018-07-19 15: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용궁이씨(龍宮李氏)의 시조(始祖) 이정식(李禎植)의 선계(先系)는 병화(兵火)로 인하여 사적(事蹟)이 실전(失傳)되어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후손들은 선조(先祖)들이 누대(累代)에 걸쳐 세거(世居)하였던 용궁(龍宮)을 관향 (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용궁(龍宮)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군(有t泉軍)에 속한 지명(地名)으로. 신라(新羅)시대에 축산현(竺山縣) · 원산현(園山愚)이라 하였는데 고려 성종(成宗) 때 용주 (龍州)로 승격시키고. 목종(穆宗) 때 군(郡)으로 강등시켰으며 현종(顯宗) 때 용궁(龍宮)으로 고쳐서 상주(尙州) 에 편입하였다가 명종(明宗) 때 다시 설치하였다. 1413년 (태종 13)에 현으로 고치고 1895년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에 군(郡)을 폐하고 신하면(申下面)은 의성군(養城郡)에, 나머지는 예천군에 편입되었고, 그 일부지 역은 용궁면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용궁이씨 시조 정식(禎植)의 아들 삼(杉)은 고려(高麗) 때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으며, 삼의 증손 희증(熙增)은 만호(萬戶)를 역임했고, 태무(泰茂) · 동환(東煥) · 입선(立善)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외에도 무관(武官)으로 용맹을 떨친 우청(遇淸)이 절충장군(折衝將軍)에, 만(萬)이 어모장군(禦梅將軍)에 올랐고, 신간(信侃)이 침절제사(儉節制使)를, 진명(振明)이 부호군(副護軍)을 역 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여 용궁이씨(龍宮李氏)는 전국에 5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용궁이씨조상인물

이삼(李 杉): 고려 때 이조(吏曹) 판서(判書)를 역임했다.

이항덕(李恒德): 조선(朝鮮) 때 서운관사(書雲觀事)를 지냈다.

이극춘(李克春): 조선조에 좌수(座首)를 역임했다.

이희증(李熙增):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역임했다.

이우청(李遇淸): 조선조(朝鮮朝) 품계(品階)가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이태무(李泰茂): 조선 때 품계(品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동환(李東煥): 조선(朝鮮) 때 품계(品階)가 가선대부 (嘉善大夫)에 올랐다.

이택복(李宅福):조선조(朝鮮朝) 품계(品階)가 통정대부 (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이입선(李立善):조선(朝鮮) 때 품계(品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이만(李 萬) : 조선(朝鮮) 때 품계(品階)가 어모장군(禦梅將軍)에 올랐다.

이경현(李敬憲):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이신간(李信侃) : 조선조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했다.

이진명(李振明):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이의량(李毅良):조선조에 중군(中軍)을 지냈다.

이형식(李炯植) :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역임했다.

이찬(李 燦) : ? - 1654(효종 5). 자(字)는 증명(仲明), 행 (行)의 후손. 독학으로 의술을 연구, 의학자로서 이름을 떨쳐 1632년(인조 10) 어의(御醫)의 치료에도 효험을 얻지 못한 인조의 병을 고쳤다. 그후 사어(司御) · 종부시주부(宗薄寺主簿) · 공조좌랑(工曹佐郞) ·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고 병으로 사퇴했다가 뒤에 내의원(內醫院)에서 어약(御藥)을 바칠 때 다시 불려 나갔다가 공조(工曹) 정랑(正郞)으로 등용(登用)되고, 이어 금산현감(金山縣監)을 지내고 사직(辭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