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순천이씨시조(順天李氏),이사고(李師古),순천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1 16:19 수정일 : 2018-07-27 11:4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순천이씨(順天李氏)의 시조(始祖) 이사고(李師古)는 고려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승평백(昇平伯)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들이 순천(順天)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게 되면서 본관(本貫)을 순천(順天)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순천(順天)은 전라남도(全羅南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 함평군(欿平郡)이었으나 신라(新羅)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으며, 996년(고려 성종 15)에 승주(昇州)로 하였다가 정종(靖宗) 때 승평군(昇平郡)이 되고, 1309년(충선왕 1) 승주목(昇州牧)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순천부(順天府)로 강등되고 조선조(朝鮮朝)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며,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 순천군(順天郡)으로 개칭, 1949년 순천읍과 일부 면을 통합하여 순천시(順天市)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昇州郡)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사고(師古)의 아들 양소(陽昭)가 일찍이 정몽주(鄭夢周) 문하에서 글을 배워 문과에 급제, 사예(司藝)를 거쳐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이방원(李芳遠)과 곡산(谷山) 청룡사(靑龍寺)에서 함께 학문을 닦아 교분이 두터웠으며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자 태조(太祖)가 여러 번 불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했다. 태종(太宗)은 옛 벗인 그의 의절(義節)을 가상히 여겨 그가 은거(隱居)해 있는 산을 청화산(淸華山)이라 부르고 저택을 하사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장지(葬地)까지 지정해 주었다고 한다.

양소(陽昭)의 아들 두 형제도 모두 벼슬에 나갔는데, 맏아들 극문(克文)은 부사(府使)를, 차남 극충(克忠)은 현령(縣令)을 지냈으며, 손자 눌(訥)과 성(誠)도 명문의 대(代)를 이었다.

그 밖의 인물로는 후손 정조(鼎祚)․영복(永福)․영기(永祺)가 현감(縣監)을 역임했고, 덕구(德耈)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태진(泰鎭)은 참판(參判)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천이씨(順天李氏)는 남한에 3,235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순천이씨조상인물

이양소(李陽昭) : 자(字)는 여건(汝健), 호(號)는 금은(琴隱), 시호(諡號)는 청화(淸華). 정몽주(鄭夢周)의 문인.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예(司藝)를 거쳐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이방원(李芳遠 : 태종)과 곡산(谷山) 청룡사(靑龍寺)에 함께 들어가 학문을 닦고 성균관(成均館)에도 같이 있어서 교분이 두터웠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로부터 여러 차례 제수(除授)되었으나 신하(臣下)는 두 왕조에 걸쳐 벼슬을 할 수 없다 하여 거절했고, 태종 역시 옛 벗으로서 그의 의절(義節)을 가상히 여겨 그가 숨어 있는 산을 청화산(淸華山)이라 부르고 저택을 하사했다. 임종 때에 스스로 명정(銘旌)에「고려진사 이양소지구(高麗進士李陽昭之柩)」라 쓰고 죽었는데, 태종이 그의 충절을 포상하여 장지(葬地)를 지정해 주고 수총군(守塚軍) 4호(戶)를 두게 했다.

이극문(李克文) :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눌(李 訥) : 조선(朝鮮)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극충(李克忠) : 조선조(朝鮮朝)에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성(李 誠) :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정조(李鼎祚) :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헌(李 軒) : 조선 때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재임(在任)하였다.

이영복(李永福) :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파(李 頗) : 조선조(朝鮮朝)에 부정(副正)을 지냈다.

이인(李 轔) : 조선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이영기(李永祺) :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욱(李 頊) : 조선에서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수원(李守元) : 호(號)는 사암(社庵). 조선 때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이우홍(李宇弘) : 조선(朝鮮) 때 효자(孝子)로 칭송을 받았으며, 의병(義兵)으로 활약했다.

이희(李 喜) :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이수항(李守恒) : 조선조에 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이덕구(李德耈) :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이정(李 珽) : 조선(朝鮮) 때 지평(持平)을 지냈다.

이지효(李止孝) : 호(號)는 남헌(南軒). 조선(朝鮮)에서 의병(義兵) 활동을 하였다.

이광국(李光國) :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혁(李 爀) : 조선조(朝鮮朝)에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충좌(李忠佐) : 조선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이태진(李泰鎭) : 호(號)는 단계(丹溪).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이충식(李忠植) :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지냈다.

이교진(李喬鎭) : 자(字)는 계은(桂隱).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이호경(李浩景) : 조선(朝鮮) 때 도사(都事)를 지냈다.

이호승(李浩升) :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이호우(李浩祐) : 조선 때 진사(進士)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