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천윤씨시조(永川尹氏),윤절생(尹切生),영천윤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7 14:44 수정일 : 2018-04-18 20:3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천윤씨(永川尹氏)의 시조(始祖) 윤절생(尹切生)은 고려(高麗)떄 호장(戶長)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曾孫) 승관(承琯)이 고려 원종(元宗) 때 문과에 장원(壯元)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고울(高爵 : 영천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천(永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영천(永川)은 경상북도 남동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고대(古代) 골벌국(骨伐國)이었던 것을 신라 초기에 영천군 일원은 절야화군(切也火郡), 신녕(新寧)지방은 사정화군(史丁火郡)이라고 하였다.경덕왕 이후에는 임고군(臨皐郡)․고울부(高鬱府)․도동현(道同縣)․임천현(臨川縣)․이지현(李旨縣)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초에는 도동․임천현을 합하여 영주군(永州郡)이라고 불렀으며 성종(成宗) 때에는 자사(刺史)를 두었다. 현종(顯宗) 때에는 신녕현이 경주(慶州)로 편입되고 명종(明宗)때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그 뒤 지주사(知州使) 소재지로 승격되었다. 1414년(태종 14) 영천군으로 개칭되고 1497년 (연산군 3) 신녕현이 폐현(廢縣)되면서 영천군(永川郡)에 예속(隸屬)되었다. 그후 1937년 영천면이 읍(邑)으로 승격하였고 1981년에는 영천읍(永川邑)이 시(市)로 분리(分離)되어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영천윤씨 시조 절생의 아들 득지(得之)가 고려 강종(康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태자 첨사(太子詹事)를 역임하였고, 6세곤 위보(渭保)는 삼중대광 문하 천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와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역임하였으며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또한 절생의 7세손 취(就)는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올라 검교(檢校) 군기시(軍器寺) 사(監事)를 지냈다.

이외에도 이조(吏曹) 참의(參議)와 경연 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낸 긍(兢),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빙(聘), 승문원(承文院) 박사(博士)를 역임한 천각(天覺), 병조(兵曹)․예조(禮曹) 좌랑(佐郞) 등을 역임한 효각(效覺) 등이 가문(家門)을 빛나게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천윤씨(永川尹氏)는 남한에 658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영천윤씨조상인물

윤승관(尹承琯): 시호(諡號)는 문도(文度), 고려(高麗) 때 정당문학(政當文學)을 지냈다.

윤위보(尹渭保):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겸 집현전(集賢殿) 태학사(太學士)을 역임하였으며,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윤수태(尹壽台):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이 되고, 1390년(공양왕 2) 문과에 급제(及第)한 후 한림(翰林院) 지제고(知制誥)를 지냈다.

윤순(尹 淳):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으로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한 후 낙안 군수(樂安郡守)를 거쳐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윤긍(尹 兢): 초명(初名)은 흠(欽), 자(字)는 경부(敬夫), 호(號)는 죽재(竹齋), 시호(諡號)는 공간(恭簡). 16세의 어린 나이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하고, 1450년(세종 3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사헌부(司憲府) 헌납(獻納)을 거쳐 1490년(성종 21) 이조(吏曹) 참의(參議) 겸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이 되었다. 정여창(鄭汝昌)․김굉필(金宏弼) 등의 인재를 천거, 참봉(參奉)에 임명케 했으며, 노령으로 사직, 팔공산(八公山)에 들어가 향풍(鄕風)을 순화(醇化)시키는데 힘썼다.

윤찬(尹 贊): 호(號)는 옥당(玉堂). 조선 때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습독관(習讀官)을 지냈다.

윤빙(尹 聘): 호(號)는 송파(松坡). 조선(朝鮮)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윤취선(尹就善): 자(字)는 경장(慶長). 조선 때 생원(生員)이 었다.

윤종선(尹從善): 자(字)는 경등(慶登). 조선(朝鮮)에서 봉사(奉事)를 역임하였다.

윤천각(尹天覺): 호(號)는 영빈(穎濱). 1733년(영조 9) 생원(生員)이 되고, 1738년(영조 14)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박사(博士)를 지냈다.

윤효각(尹效覺): 호(號)는 정암(正菴). 1816년(순조 16)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및 병조(兵曹)․예조(禮曹) 좌랑(佐郞) 등을 역임하고, 1826년(순조 26) 남원(南原) 부사(府使)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