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의흥예씨시조(義興芮氏),예락전(芮樂全),의흥예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4 11:06 수정일 : 2018-02-25 19:59

시 조

예씨(芮氏)는 중국(中國)에서 왔다고 하나 정확한 문헌(文獻)이 없어 선계(先系)를 알 수 없다. 의흥예씨시조(義興芮氏 始祖) 예락전(芮樂全)은 문장(文章)과 덕망이 뛰어난 석학(碩學)으로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부계(缶溪 : 의흥의 옛 지명)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의흥(義興)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헌에 의하면 예씨(芮氏)의 본관(本貫)은 의흥(義興) 외에도 수원(水原), 남양(南陽), 청풍(淸風) 등 18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의흥(義興) 단본으로 전한다.


본관의 유래

의흥(義興)은 경상북도(慶尙北道) 군위군(軍威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의흥군(義興郡)을 고려(高麗) 현종(顯宗) 때 안동부(安東府)에 속하게 하였고, 공양왕(恭讓王) 때 감무(監務)를 두고 부계현(缶溪縣)을 예속하였으며, 후에 의성(義城)에 속하였다가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현(縣)이 되었고 1985년(고종 32)에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에 군위군(軍威郡)에 속한 의흥면(義興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의흥예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승석(承錫)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락전(樂全)의 8세손으로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그의 아들 충년(忠年)은 1475년(성종 6)에 문과(文科)에 올라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외에도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한 인상(仁祥)과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지낸 몽진(夢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흥래(興來) 등이 유명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의흥예씨(義興芮氏)는 남한(南韓)에 총 12,80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의흥예씨조상인물

예작문(芮作紋): 고려(高麗) 때 동정(同正)을 역임하였다.

예중태(芮仲泰): 고려 때 낭장(郎將)을 지냈다.

예원석(芮元碩): 고려조에 군기시 감(軍器寺監)을 역임하였다.

예난(芮 蘭): 고려(高麗) 때 전객 사인(典客舍人)을 지냈다.

예한경(芮漢卿):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예사문(芮思文):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예승석(芮承錫): ?~1476(성종 7). 자(字)는 주경(周卿), 호(號)는 수몽헌(守夢軒), 사문(思文)의 아들. 1447년(세종 29) 진사(進士)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458년 좌헌납(左獻納)이 되고, 1466년 변정원 판결사(辨定院判決事)․이조 참의(吏曹參議) 등을 거쳐 1468년 대사간(大司諫)에 승진하였다. 1469년(예종 1) 대호군(大護軍)으로 춘추관 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겸임, 이어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나갔다가 이해 성종(成宗)이 즉위하자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어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를 겸임했으며, 1471년(성종 2) 「세조실록(世祖實錄)」 이듬해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각각 참여했다. 1473년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내고, 1475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예난종(芮蘭宗):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예난정(芮蘭貞):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예난수(芮蘭秀):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를 지냈다.

예신충(芮信忠): 조선 때 만호(萬戶)를 지냈다.

예은결(芮恩結):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예득보(芮得寶): 조선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예충년(芮忠年): 조선(朝鮮) 때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했다.

예인상(芮仁祥): 조선조(朝鮮朝)에서 훈련원(訓練院) 판관(判官)을 지냈다.

예몽진(芮夢辰): 조선에서 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을 역임하였다.

예용주(芮用周):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예덕유(芮德劉):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예석훈(芮碩薰): 조선(朝鮮)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예일신(芮日新): 조선조(朝鮮朝)에 학자(學者)로 명성을 얻었다.

예흥래(芮興來): 조선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예지열(芮之烈): 조선조(朝鮮朝)에 학자(學者)로 널리 알려졌다.

예대열(芮大烈): 조선 때 진사(進士)를 지냈다.

예성질(芮成質): 조선시대에 문과(文科)에 급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