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주손씨시조(淸州孫氏),손필영(孫弼榮),청주손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8 18:32 수정일 : 2018-04-12 13:4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주손씨(淸州孫氏)는 밀양손씨(密陽孫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도시조(都始祖) 손순(孫 順)의 25세손 손필영(孫弼榮)을 일세조(一世祖)로 받들고 있다.

「밀양손씨족보(密陽孫氏族譜)」에 의하면 그는 고려 원종(元宗) 때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오른 찬(贊 : 도시조 순의 19세손)의 6세손 덕기(德基)의 아들로 전하며, 고려조에서 관직을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가 후에 청성군(淸城君)에 개봉(改封)되었으므로 후손들이 충청도(忠淸道) 음성(陰城)지방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청주를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청주(淸州)는 충청북도(忠淸北道) 중앙에 위치하는 도청소재지로서 원래는 마한(馬韓)의 땅이였는데 백제(百濟)가 상당현(上黨縣)이라 하였고,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으로 불리우다가 685년(신라 신문왕 5) 서원소경(西原少京)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와서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高麗朝)에 와서 청주(淸州)로 고치고 그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한 후 1895년(고종 32) 청주군이 되었으며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市)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그후 일세조 필영(弼榮)의 아들 취(就)가 고려 때 영녕군(永寧君)에 봉해졌고, 손자 희(僖)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를 역임하여 찬성사(贊成事)를 거쳐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지낸 원렬(元烈 : 희의 맏아들)과 함께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한편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했던 채(採 : 원렬의 아들)는 고려의 국운(國運)이 기울고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진천(鎭川)에 낙향(落鄕)하여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뒤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고, 그의 증손 근종(謹宗)은 이조 참판에 추증되어 선(先), 환(環) 등과 함께 청주손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손씨(淸州孫氏)는 전국에 1,13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주손씨조상인물

손취(孫 就) 고려 때 영녕군(永寧君)에 봉(封)해졌다.

손희(孫 僖)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고려(高麗)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를 지냈다.

손원렬(孫元烈) 고려조(高麗朝)에 찬성사(贊成事)를 지내고 제학(提學)에 이르렀다.

손채(孫 採) 고려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나 조선(朝鮮)이 개국하자 진천(鎭川)으로 낙향(落鄕)하였다.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손인(孫 堙) 자(字)는 현지(顯之). 조선 때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손한웅(孫漢雄) 자(字)는 사강(士强).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다.

손근종(孫謹宗) 자(字)는 청지(淸祉). 조선조(朝鮮朝)에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손지(孫 漬) 자(字)는 자윤(子潤). 조선에서 사마(司馬)를 지냈다.

손희성(孫希聖) 자(字)는 대이(大而). 조선(朝鮮) 때 생원(生員)이었다.

손희철(孫希哲) 자(字)는 명숙(明叔).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손희준(孫希濬) 자(字)는 원중(源仲). 조선조에 생원(生員)이었다.

손희언(孫希彦) 자(字)는 미중(美仲).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손효선(孫孝先) 자(字)는 행초(行初). 조선조에 생원(生員)이었다.

손찬선(孫纘先) 자(字)는 술초(述初).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손계선(孫繼先) 자(字)는 선초(善初). 조선(朝鮮) 때 생원(生員)이었다.

손시만(孫時萬) 자(字)는 자화(子華).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손환(孫 環) 자(字)는 경지(鏡之).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