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곤산곤양배씨시조(昆山昆陽裵氏),맹달(孟達),곤산배씨,곤양배씨

작성일 : 2017-04-15 16:27 수정일 : 2018-03-05 10:2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일세조(一世祖) 맹달(孟達)은 달성군(達城君) 운룡(雲龍)의 13세손으로 조선 세종(世宗) 때 내금위장(內禁衛將)을 거쳐 1454년(단종 2)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진압하는 데 공(功)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올라 정헌대부(正憲大夫)로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특진되었으며 서강군(西江君)에 봉해졌다가 곤산군(昆山君)에 개봉(改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달성 배씨(達城裵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관향(貫鄕)을 곤산(昆山)으로 삼게 되었다.

곤산(昆山)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사천군(泗川郡)에 속해있는 곤양(昆陽)의 옛 지명으로 고려(高麗) 때 곤명현(昆明縣)이라 하였고, 1018년(현종 9) 진주(晋州)에 속하였다가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남해현(南海縣)과 합하여 곤양(昆陽)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사천(泗川)에 속하였다가 곧 회복하여 군(郡)이 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고, 1913년 군을 폐하고 서면(西面)․금양면(今陽面)은 하동(河東)에 소속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사천에 병합되어 곤양면(昆陽面)․곤명면(昆明面)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곤산 배씨의 인맥(人脈)으로는 맹달(孟達)의 아들 4형제가 현달(顯達)했고, 그들의 후대에서 훌륭한 인재(人財)가 많이 배출되어 가세(家勢)가 크게 융성하기 시작했다.

맹달의 맏아들 숙흥(叔興)은 조선조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거쳐 진주 병마절도사(晋州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둘째 사종(嗣宗)은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양지 현감(陽智縣監)을 역임했으나 연산군(燕山君)이 즉위하여 난정이 계속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음애(陰崖) 이 운(李 耘)을 비롯한 충암(沖菴) 김 정(金 淨) 등과 도의(道義)를 교유했다.

한편 절도사 숙흥의 손자 언구(彦矩 : 감찰치인의 둘째 아들)는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를 지냈고, 그의 아우 언손(彦孫)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 순철한 치레(致禮)의 아들 언필(彦弼)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치지(致智)의 아들 수(洙)가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현감 사종(嗣宗)의 증손 승조(承祖 : 증갑의 아들)와 운조(雲祖 : 용양위 부호군을 지냄) 형제가 유명했다.

조선 예학(禮學)의 조종(祖宗)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했던 승조(承祖)는 선조(宣祖)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의 뜻을 버리고 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俊吉) 등과 교유하며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진력했으며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人財)를 배출하여 문명(文名)을 떨침으로서, 광흥 도사(廣興都事)를 지내고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추증된 익립(翊立),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 시창(時昌), 횡성 현감(橫城縣監) 명성(命晟)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곤산배씨는 1,556명 곤양배씨는 7.546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곤산곤양배씨조상인물

배사종(裵嗣宗) 자(字)는 채보(采甫), 호(號)는 효구헌(孝逑軒). 조선 성종(成宗)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양지 현감(陽智縣監)을 지냈는데 연산군(燕山君)이 즉위(卽位)하여 국정(國政)이 날로 혼미(昏迷)해짐을 개탄(慨嘆)하고 치사(致仕)하였다.

배숙흥(裵淑興) 자(字)는 여청(汝淸). 조선조(朝鮮朝)에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거쳐 진주병마절도사(晋州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배언구(裵彦矩) 조선조(朝鮮朝)에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배언손(裵彦孫)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배언필(裵彦弼) 자(字)는 무대(武大). 조선(朝鮮) 때 선전관(宣傳官)에 이르렀다.

배수(裵 洙) 자(字)는 성광(聖光). 조선조에 문과(文科)에 급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배증갑(裵曾甲) 자(字)는 효선(孝先), 호(號)는 용계(龍溪). 호군(護軍)을 지냈다.

배자현(裵自賢)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배승조(裵承祖) 자(字)는 여구(汝逑), 호(號)는 농와(聾窩). 김장생(金長生)의 문인(門人). 선조(宣祖)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과거(科擧)를 단념하고 김 집(김 集)․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과 수교(修交)하였으며, 후진양성(後進養成)에 힘썼다.

배운조(裵雲祖) 자(字)는 여운(汝運). 조선(朝鮮) 때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올랐다.

배수남(裵秀男)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부사용(副司勇)을 지냈다.

배덕남(裵德男) 조선(朝鮮) 때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

배준남(裵俊男) 조선조(朝鮮朝)에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올랐고,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배근남(裵根男)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배익립(裵翊立) 자(字)는 군보(君輔). 조선(朝鮮) 때 중직대부(中直大夫)로 광흥도사(廣興都事)이 이르렀고,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추증(追贈)되었다.

배시익(裵時益)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배시탁(裵時鐸)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배충서(裵忠恕)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배시창(裵時昌) 자(字)는 성지(盛之). 조선 때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을 지냈다.

배명성(裵命晟) 조선(朝鮮) 때 횡성 縣監(橫城縣監)을 역임했다.

배시열(裵時說) 조선조(朝鮮朝)에 부사용(副司勇)을 역임하였다.

배시상(裵時尙)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에 올랐다.

배시계(裵時啓) 자(字)는 여둔(汝遯).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배침(裵 沉) 조선조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배영성(裵榮成) 자(字)는 취지(就之). 조선(朝鮮) 현종조에 문과(文科)에 급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결성 현감(結城縣監)을 거쳐 첨절제도위(僉節制都尉)를 지냈다.

배귀생(裵貴生) 자(字)는 희보(希甫), 호(號)는 죽계(竹溪). 조선조에 조봉대부(朝奉大夫)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배만절(裵萬節)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배무훈(裵茂勳) 자(字)는 훈지(勳之).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배영세(裵榮世) 자(字)는 영지(英之). 조선에서 선무랑(선무랑)에 이르렀다.

배종주(裵宗冑) 자(字)는 대여(大汝), 호(號)는 용강(龍岡).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배원경(裵元慶) 자(字)는 선백(善伯).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배명일(裵命一) 자(字)는 일보(一甫). 조선(朝鮮)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배명상(裵命常) 자(字)는 상지(常之).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배경욱(裵敬郁) 자(字)는 사문(士文). 조선에서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올랐다.

배영길(裵永吉) 자(字)는 이철(而喆).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배흥도(裵興道) 조선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배숙종(裵淑綜)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배숙온(裵淑溫)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배덕남(裵德男) 조선에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

배기생(裵起生)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였다.

배대해(裵大海)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배준(裵 峻) 초명(初名)은 준해(峻海).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광양 현감(光陽縣監)을 지냈다.

배붕해(裵鵬海) 자(字)는 구만(九萬). 조선(朝鮮)에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배 겸(裵 謙)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배세화(裵世華) 자(字)는 화보(華甫).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배숙정(裵叔禎) 자(字)는 여서(汝瑞).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배몽룡(裵夢龍)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배견용(裵見龍) 조선조(朝鮮朝)에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배이경(裵以絅) 자(字)는 君三(군삼). 조선조(朝鮮朝)에 선전관(宣傳官)․풍산 만호(豊山萬戶)를 지냈다.

배순효(裵舜孝) 조선에서 공조 좌랑(工曹佐郞)․길주 교수(吉州敎授)를 지냈다.

배대윤(裵大潤) 조선 때 장사랑(將仕郞)으로 숭릉 참봉(崇陵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