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울산박씨시조(蔚山朴氏),박윤웅(朴允雄)

작성일 : 2017-04-11 18:35 수정일 : 2018-02-12 10:45

울산박씨의 연원

1672년 (현종13) (창간보) 수보시 序文에 「우리 東邦 의 朴氏는 新羅 始祖王부터 시작되었고, 그 번창함이 또한 盛하고 悠久하다 또 말하기를 根源은 가장 오래되어 分派가 되고 貫鄕도 따라서 많이 갈라졌다(吾東之有朴氏 自新羅 始祖王 基蕃旦盛久矣 又曰朴之源 最久派分支別 封貫基衆>」 고 하였다.

울산박씨 시조는 홍려백 시호 장무공 박윤웅(蔚山朴氏 始祖 興麗伯 諭號 莊武公 朴允雄) 부터 시작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市中에 전파되고 있는 성보에는 고려 태조 시 개국공신 박윤웅을 고려숙종시로 오록(誤錄)되어 , 傳하고 있으니 후손된 자 통탄함을 금치 못하는 바다 이번 총감에 바로잡아 수록한다.

시조 允雄은 신라효공왕 5년(901)신유에 지금 울산 학성(하곡현 신두산)에 정착하여 신학성장군(神鶴城將 軍)이 되어 이 지역을 통치하는 호족장(豪族長)으로서 세력을 확장하고 소국왕자격(小國王者之格)으로 번창하였다.

918년 고려태조 개국 시에 보좌하여 개국공신에 오르고 후삼국 통일 시는 사신 최환(崔吳)을 고려에 遣使하여 河曲縣이 귀부하였다.

이 功을 가상히 여긴 太祖는 동진 동안 우풍현을 병합하여 홍리부(興麗府)로 격상 하고 公에게 홍려백(興麗伯)을 봉작(封爵)하여 大將軍에 拜命하고 통치 하던 全地域을 賜采地로 下賜되었다.

아직도 그 당시 사채지일부인 울산북구 구류동 地先海 中 미역바위 一區가 보존되어 매년 수세하여 九月 中丁 용강사(龍岡祠) 享禮 때 祭物로 제공하고 있으며 그 미역바위는 2001년 12월 20일자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38호로 지정되어 우리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배위(配 位)는 양산부인 이씨(楊山夫人 李氏)며 아들 식(息)은 태조가 불러 光宗朝에 上將軍과 景宗朝에 國相이 되었고 孫子 원일(元逸)은 성종조에 平章事 목종조에 國相을 지냈다.

高麗朝에는 家門이 興盛 發展하였으나 朝鮮의 沙隱公諏와 柳隱公急 兩從班은 不事二君의 大義에 따라 終 身守節함으로 家門哀退되었다 後孫도 흩어져 漏譜者가 倍도 넘는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남한에 26.57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