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선산박씨시조(善山朴氏),박선민(朴善敏),선산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0 14:47 수정일 : 2018-04-15 16:2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신라(新羅) 눌지왕(訥祗王)때 일선군(一善郡)으로 불렸으며, 경덕왕(景德王: 제 35대 왕, 재위기간: 742 ~ 765)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 995년(고려 성종 14)에 선주(善州)로 고쳤고, 현종(顯宗)때 상주(尙州)에 속하였다가 1143년(인종 21) 일선현으로, 다시 선주로 되었다. 1413(조선 태종 13) 선산(善山)으로 고쳤다가 후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고,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

선산박씨(善山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의 22세손 선민(善敏)을 시조(始祖)로 한다.

신라박씨선원세보(新羅朴氏璿源世譜)에 의하면 그는 조선조(朝鮮朝)에서 상장군(上將軍)과 간성병마절도사(杆城兵馬節度使)를 지낸 지생(祗生)의 손자이자 사의대부(司議大夫)로 현감(縣監)을 역임한 희충(希忠)의 아들로서, 음보(蔭補)로 목사(牧使)에 올라 문명(文名)을 떨쳤고, 선산(善山)을 관적(貫籍)받아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선산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증손 숭(崇: 부제학과 대구 관찰사를 지낸 정도의 아들)이 조선 때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지고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나 피화(被禍)되어 함북명천(咸北明川)의 칠보산(七寶山)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정착(定着)하게 되었다. 숭(崇)의 아들 임창(林昌)은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와 갑산부사(甲山府使)를 지냈고, 손자 원후(元厚: 임창의 둘째 아들)는 성종(成宗)때 경성부사(鏡城府使)를 역임한 후 수하파(水下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근손(根孫: 임창의 셋째아들)은 성종때 전라좌도우후(全羅左道虞侯)를 지낸 후 답동파(畓洞派)의 파조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근손(根孫)의 손자 준령(峻鈴: 기의 둘째 아들)이 봉직랑(奉直郞)으로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현종(玄宗)은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영(英: 기의 셋째아들, 준령의 아우)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외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낸 흘립(屹立: 영의 둘째 아들)과 숙종(肅宗)때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겸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낸 찬일(贊一)의 부자(父子)가 유명했으며, 문빈(文彬)은 판관(判官)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선산박씨는 남한에 1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선산박씨조상인물

박자수(朴自脩) 조선(朝鮮) 때 좌윤(左尹)을 지냈다.

박정도(朴正道) 조선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박 숭(朴 崇) 조선조(朝鮮朝)에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였다.

박 노(朴 魯) 조선에서 판서(判書)를 지냈다.

박임창(朴林昌)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원후(朴元厚)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박근손(朴根孫) 자(字)는 근손(根巽). 조선에서 우후(虞侯)를 역임하였다.

박 영(朴 英)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박현종(朴玄宗) 조선 때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박흘립(朴屹立) 조선조(朝鮮朝)에 판결사(判決事)를 지냈다.

박찬일(朴贊一)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박근종(朴根宗)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문빈(朴文彬)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박시재(朴時才)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 횡(朴 橫)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