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광천동씨시조(廣川董氏),동중서(董仲舒),광천동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5 19:14 수정일 : 2018-04-05 16:0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동씨(董氏)의 연원(淵源)은 기원전 2,250년경 황제(黃帝)의 6세손 류숙안( 叔安)의 아들 보(父)가 순(舜) 임금으로부터 동씨(董氏)의 성(姓)을 하사(下賜)받은 것이 시초가 되며, 계보(系譜)는 전한(前漢)의 대학자(大學者) 동중서(董仲舒)로부터 시작된다.

광천(廣川)은 중국 북부지방의 화북성(華北省) 조강현(棗强縣)에 속한 지명으로 지금의 북경(北京)근처이며, 고대 중국의 중요 산업지대로 유명하다.

「광천동씨대보(廣川董氏大譜)」의 기록에 의하면 대유(大儒) 동중서(董仲舒)는 기원전 179년(한나라 문제 원년) 중국 화북성(華北省)에서 출생하여 고령(高齡)한 학덕(學德)으로 유교일존주의(儒敎一尊主義)를 확립, 한(漢)나라 유교독립의 기반을 중흥시켜 동양사(東洋史)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문묘(文廟)에 배양되어 동씨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우리 나라 동씨(董氏)는 동중서(董仲抒)의 43세손인 동승선(董承宣)이 고려 말에 명(明)나라 접위사(接慰使)로 동래(東來)하여 조선개국(朝鮮開國)과 함께 출사한 후 나라에 공을 세워 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군에 봉록되고, 벼슬에 서 물러나 함경도(咸鏡道) 북청(北靑)의 이곡(泥谷)에 세거(世居)하면서부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특히 동씨(董氏)는 처음에 승선(承宣)의 봉군지였던 영천(榮川)을 관향(貫鄕)으로 쓰게 되었고, 함경북도 명천(明川)지방에 살던 후손들은 원주(原州)로 칭관(稱貫)하는 등 동원(同源)이면서도 관향(貫鄕)을 달리하여 부르다가 조선 단종조(端宗朝)에 이첩(移牒 : 관청으로 보내는 통첩)으로 다시 영천이라 하였으나,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明)나라 제독(提督)으로 원병(援兵)을 이끌고 우리 나라에 건너운 동일원(董一元)의 소장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始祖) 동중서(董仲抒)의 출생지인 중국의 광천(廣川)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 승선의 아우 인선(印宣)은 명나라 홍무년간(洪武年間 : 1368~1398)에 아버지 박소(搏霄)와 절의지간(節義之間)인 서 달(徐 達)의 천거로 태조조(太祖朝)에 지휘사(指揮使)가 되어 전공을 세움으로써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

그리하여 광천 동씨(廣川董氏)는 강도상(江都相) 동중서(董仲舒)를 시조(始祖)로 삼고, 영천군(榮川君) 승선(承宣) 과 이부 상서(吏部尙書) 인선(印宣)을 각각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界)를 이어왔다.

동씨(董氏)의 본관(本貫)은 광천 을 비롯하여 광주(廣州)․영천(榮川)․풍천(豊川) 등 25본이 문헌(文獻)에 전해지나 모두가 동원분파(同源分派)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인물

동방의 거유(巨孺) 동중서(董仲抒)의 학덕(學德)을 이어받은 광천 동씨(廣川董氏)는 특히 조선조에서 훌륭한 인재(人財)를 많이 배출하여 도덕(道德)을 가문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승선(承宣)의 손자 덕란(德蘭)은 공조 시랑(工曹侍郞)을, 현손(玄孫) 보하(寶夏)와 상하(尙夏)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여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오른 학정(學政 : 인선의 현손)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한편 일원(一元)의 아들 창순(昌順)은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대순(大順)의 맏아들 한필(漢弼) 은 인조조(仁祖朝)에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있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청(淸)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和議)가 성립하자 비분강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며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遺言)했다고 한다.

희방(希芳)의 아들 응란(應蘭)은 1624년(인조 2) 부원수(副元帥) 이 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향병(鄕兵)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우봉 현감(牛峰縣監)을 거쳐 갑산 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그밖의 인물로는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낸 혜진(惠震)과 오위도총 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한 정란(廷蘭)이 유명했으며, 하욱(夏旭)은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라 부호군(副護軍) 희경(禧景), 부사(府使) 기연(基衍), 현감(縣監) 진호(鎭鎬)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천동씨(廣川董氏)는 남한에 2,6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광천동씨조상인물

동부야(董富野) 조선조에 천호(千戶)를 지냈다.

동덕란(董德蘭) 조선 때 공조 시랑(工曹侍郞)을 역임하였다.

동시갑(董時甲) 조선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동보하(董寶夏)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했다.

동학정(董學政) 조선에서 태자 태보(太子太保)를 지냈다.

동안미(董安美) 시호(詩號)는 무후(武厚). 조선(朝鮮)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했다.

동안의(董安義) 조선 때 추밀원사(樞密院事)를 지냈다.

동안우(董安宇) 조선 때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동 옥(董 沃) 조선 에서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동 지(董 沚) 조선 때 선략정군(宣略將軍)에 이르렀다.

동심계(董審桂) 조선에서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동석손(董碩孫) 조선 때 제용감 직장(濟用監直長)을 역임하였다.

동 현(董 炫) 일명(一名) 현(賢). 조선에서 첨사(僉事)를 지냈다.

동석산(董錫珊) 조선(朝鮮)에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

동대순(董大順) 자(字)는 치화(致和).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동창순(董昌順) 초명(初名)은 흥산(興山). 조선에서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지냈다.

동 천(董 仟) 조선 때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를 지냈다.

동인손(董仁孫) 조선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주부(司憲府主簿)를 역임하였다.

동한필(董漢弼) 자(字)는 득량(得良), 호(號)는 두옹(斗翁). 조선조에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지냈다.

동한연(董漢延) 초명(初名)은 을연(乙延).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다.

동한상(董漢尙) 초명(初名)은 상록(尙祿).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다.

동승상(董承相) 조선조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동세웅(董世雄)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동세장(董世章)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형재(董亨載) 자(字)는 예지(禮之). 조선(朝鮮)에서 돈령도정(敦寧都正)을 지냈다.

동효남(董孝男)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장악원정(掌樂正)을 지냈다.

동계일(董啓日) 조선조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연년(董延年) 조선에서 봉직랑(奉直郞)에 올랐다.

동 경(董 璟) 조선 때 성균관 진사(進士)를 지냈다.

동한륜(董翰倫) 조선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동경신(董京申) 조선조에 통덕랑(通德朗)에 올랐다.

동봉명(董鳳鳴) 조선 때 승사랑(承仕郞)에 이르렀다.

동계남(董季男) 조선(朝鮮)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다.

동안국(董晏國) 조선 때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동안절(董晏節)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안길(董晏吉)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진서(董震叙) 자(字)는 성겸(誠兼).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다.

동문혁(董文赫)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동제현(董濟賢) 자(字)는 사희(士希). 조선에서 봉직랑(奉直郞)으로 첨정(僉正)을 지냈다.

동의일(董義一) 조선 때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다.

동사준(董士俊) 조선에서 장사랑(將仕郞)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동봉천(董奉天)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동응천(董應天) 조선조에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동응란(董應蘭)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 때 창의(倡義)하여 향병장(鄕兵將)으로서 배홍덕(裵洪德)․이덕홍(李德洪)․이성남(李聖南) 등과 함께 적을 대파하고 진무원종(振武原從) 1등공신에 오르고, 우봉 현령(牛峰縣令)을 거쳐 갑산 부사(甲山府使)이르렀다. 병사(兵使)에 추증되었다.

동혜춘(董惠春) 자(字)는 청우(淸祐). 조선에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냈다.

동혜진(董惠震)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추증되었다.

동도광(董道光)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동도손(董道遜) 조선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동지하(董芝夏)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동이천(董以天)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동정현(董正賢)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정란(董廷蘭) 조선 때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하였다.

동소남(董召南) 조선(朝鮮)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동익한(董翼漢)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동명한(董鳴漢)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동하욱(董夏旭) 자(字)는 내혁(乃赫), 호(號)는 성와(省窩). 조선에서 공조 참판(工曹參判), 도총부 부총관(都摠府副摠管)을 지냈다.

동석고(董碩高) 자(字)는 도전(道全). 조선 때 흥양 만호(興陽萬戶)를 역임하였다.

동득인(董得仁)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냈다.

동정책(董廷策) 자(字)는 정일(正一).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동인덕(董仁德) 조선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동원춘(董元春) 일명(一名) 원지(元祉). 조선 때 용양위 호군(龍 衛護軍)을 지냈다.

동진성(董振聲)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동희경(董禧景)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동기연(董基衍) 자(字)는 인여(仁歟).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동진호(董鎭鎬) 자(字)는 정오(貞五).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동병우(董秉祐) 자(字)는 덕오(德五). 조선 때 의관(議官)을 지냈다.

동성숙(董性叔) 조선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동종삼(董鍾三) 조선 때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동성필(董性珌) 자(字)는 득언(得彦). 조선 때 의관(議官)을 역임했다.

동덕현(董德賢) 조선에서 참찬(參贊)을 역임했다.

동민수(董敏秀) 한말(韓末)에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로 활약했다.

동풍신(董豊信) 한말(韓末)에 독립운동가로 일제에 항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