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개성노씨시조(開城路氏),노은경(路誾儆)

작성일 : 2017-04-04 13:21 수정일 : 2018-04-15 12:0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노씨(路氏)는 중국 내황(內黃)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한(漢)나라 때 노(路) 땅에 봉해진 황제(黃帝)의 후손이 지명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된다.

우리나라 노씨는 원(元)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인 노은경(路誾儆)이 1351년(공민왕 즉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고려 공민왕 비, 원나라 황족 위왕의 딸)를 배종(倍從)하고 고 려에 들어와 개성(開城)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함으로써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다.

개성(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려(高麗)의 수도(首都)였으며, 처음에는 송악군(松岳軍), 송도(松都), 개경(開京), 부소갑(扶蘇岬), 동비홀(冬比忽), 촉막군(蜀幕郡) 등으로 불리웠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이 곳 송악산(松岳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성(開城)과 송악(松岳)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960년(광종 11) 황도(皇都)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고쳤다.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906년 개성군이 되고,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開城市)가 되었다.

후손들은 노은경(路誾儆)을 시조(始祖)로 하고 개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계승하였고, 조선 초기에 시조의 손자 순련(順連)이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으며 순련의 아들 영창(永昌)은 우찬성(右贊成)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

그외 주부(主簿)를 지낸 세행(世行 : 영창의 손자)과 감찰(監察)을 지낸 붕만(鵬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사직(師稷) 등이 대표적이며 성운(聖運)은 장례원정(掌禮院正)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개성 노씨(開城路氏)는 남한에 1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