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군위나씨시조(軍威羅氏),나문서(羅文瑞),군위나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1 11:28 수정일 : 2018-04-14 21:2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금성나씨(錦城羅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係統)으로 알려진 군위나씨(軍威羅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역임한 나인(羅認 : 일명 윤)의 막내아들 문서(文瑞)가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적라백(赤羅伯 : 군위의 옛 지명)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군위(軍威)로 하게 되었다.

군위(軍威)는 경상북도(慶尙北道) 중앙부(中央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노동멱현(奴同覓縣 : 일명 여두멱현)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 : 제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때 지금의 명칭인 군위(軍威)로 고쳐 숭선군(崇善郡 : 선산의 옛 지명)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가 고려(高麗)때는 상주(尙州)에 귀속되었으며, 남쪽에 적라산(赤羅産)이 있기 때문에 한때 적라현(赤羅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위현(軍威縣)을 군(郡)으로 개칭하고, 1914년 지명(地名) 개편시 인근의 효령(孝令)․의흥(義興)․비안(比安)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적라백(赤羅伯) 문서(文瑞)의 손자인 혁(爀)이 고려 말에 지신사(知申事)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의성(義城)으로 내려가 은거(隱居)하여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충절을 기렸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명우(明佑)의 아들중 장자인 빈은 조선조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으며, 차남 옥은 4대조(四代祖)인 지신사공(知申事公) 혁(爀)의 행장(行狀)을 짓는 일로 세인(世人)의 미움을 사서 대정현(大靜縣 : 제주도)으로 귀양갔다가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한편 진도 군수(珍島郡守) 광수(光秀)의 아들 희준(希俊)이 경기 도사(京畿都事)를 지냈고, 손자(孫子) 사륜(娑倫)은 참봉(參奉)으로 임진왜란 때 황해도(黃海道) 금천(金川)으로 이거(移居)하여 슬하에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차남 기수(麒壽)가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3남 인수(麟壽)는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내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순절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외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역임한 대정(大汀 : 내금위장 운한의 아들)과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대연(大演) 형제가 유명했고, 부호군 세침(世琛)과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세근(世瑾)은 대연(大演)의 아들로서 선조(先組)의 전통(傳統)을 이어 가문(家門)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군위 나씨(軍威羅氏)는 남한(南韓)에 38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군위나씨조상인물

나혁(羅 爀) 고려(高麗) 때 지신사(知申事)를 지냈으나 고려(高麗)가 망하자 은거불사(隱居不仕)하고 향리(鄕里) 군위(軍威)로 돌아와 세거(世居)하였다.

나건(羅 鍵)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나명우(羅明佑) 조선조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나광수(羅光秀) 조선 때 진도 군수(珍道郡守)를 역임하였다.

나희준(羅希俊) 조선에서 경기 도사(京畿都事)를 지냈다.

나사륜(羅嗣倫) 조선(朝鮮)때 참봉(參奉)을 지냈고,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나기수(羅麒壽)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나인수(羅麟壽) 자(字)는 서백(瑞伯).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라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나운한(羅雲翰) 자(字)는 경원(京遠). 조선에서 내금위장을 지냈다.

나대정(羅大汀) 자는 자청(子淸). 조선 때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역임하였다.

나대연(羅大演)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나대해(羅大海) 조선조에 예빈시 첨정(禮賓寺僉正)을 역임하였다.

나세유(羅世瑜) 조선(朝鮮)때 통정대부(通政夫)에 올랐다.

나세심(羅世堔)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나세근(羅世瑾) 조선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다.

나세규(羅世珪) 조선(朝鮮) 때 노직(老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