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함박김씨시조(咸博金氏),김성인(金誠仁),함박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0:14 수정일 : 2018-04-15 11:1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함박김씨(咸博金氏)의 시조(始祖) 김성인(金誠仁)은 일본 (日本) 출신으로 본명(本名)이 사여모(沙汝菜)이다. 「김해김 씨향화공세보(金海金氏向化公世譜)」에 의하면 그는 1592년 (선조 25) 4월 임진왜란 때 일본군(日本軍)의 좌부장(左副 將)으로 우선봉장(右先錄將) 김충선(金忠善 : 본명 사야가, 우륵 김씨의 시조)과 함께 경남 김해(慶南金海)로 들어와 조선(朝鮮)에 귀화(歸化)하여 많은 전공(戰功)을 세우자 경상도 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박진(朴晋)이 그의 공적 (功續)을 특별히 계문(啓聞 : 임금에 게 사실을 아룀)하여 , 선조 임금은 그를 아껴 관(冠)을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함박(咸博)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청도군(淸道郡) 풍각면 (豊角面)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삼한시대(三韓時 代)에는 이서소국의 땅이었다.

그 후 1603년(선조: 36) 자원하여 북방 경비(北方警備)에 나가 공을 세웠으며 , 광해군(光海君)은 그를 승일상래(乘駐上 來 : 임금의 명령으로 지방의 벼슬아치를 부를 때 역마를 주던 일)하여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고 김씨(金氏)의 성(姓)과 함께 이름을 성인(誠仁)으로 하사(下賜)하여 자헌대부(資憲 大夫 : 정2품 문무관의 관계)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교지(敎旨)를 내렸다. 그는 그 후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慶北) 청도군(淸道郡) 풍각면(豊角面) 함박동(咸博洞)에 정착(定着)하여 일생(一生)을 마치니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 祖)로 하고 그가 처음 들어온 김해(金海)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러나 서로 혈통이 다른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오늘날에 와서 함박김씨(咸博金氏)로 개칭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始祖) 성인(誠仁)의 아들 귀성(貴成)이 대(代)를 이어 북방 경비(北方警備)에 공헌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어모장군(禦梅將軍)으로 호분 위상호군(虎賈衛上護軍 : 오위에 속한 정3품 무관직)에 이르렀으며 손자(孫子) 홍발(興發)은 인조(仁祖) 때 무과(武科) 에 급제하여 무용(武勇)을 떨쳤고, 1733년(영조 9) 득추(得 秋)의 맏아들로 출생한 수태(守泰)는 수직(壽職)으로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 문무관의 품계)에 이르렀다

오늘날 함박김씨(咸博金氏)는 경상북도(慶尙北道) 청도(淸道)를 비롯한 대구(大邱) 지방에 살고 있는 후손 상수(相 壽) · 상덕 (相德) · 상방(相邦) · 용호(龍浩) 등이 종친회(宗親會)를 결성(結成)하여 전국(全國)에 흩어진 성손(姓孫)들을 찾아 종중(宗中)의 결속(結束)을 다지고 있으며, 숭조사업(崇祖事業)과 종중발전(宗中發展)을 위하여 성손(姓孫)들 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고 있다.


역대인물-함박김씨조상인물

김귀성(金貴成) 자(字)는 진성(振聲). 시조(始祖) 성인(誠仁)의 아들. 부친(父親) 성인(誠仁)과 함께 북방(北方) 경비에 공(功)을 세워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고 1622년(광해군 14)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호분위 상호군(虎賁衛上護軍)에 올랐다.

김흥발(金興發) 자(字)는 화중(和中), 상호군(上護軍) 귀성(貴成)의 아들. 조선(朝鮮) 인조(仁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김수태(金守泰) 1733 (영조 9) ~ 1809 (순조 9)  자(字)는 영수(永守)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