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강화김씨시조,강화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11-09 15:44 수정일 : 2018-04-07 16:5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옛날 고려 때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강화김씨(江華金氏)는 동원(同源)인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면서도 계통(系統)을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첫째, 경순왕 김 부(金 傅)의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명종(鳴鐘)7세손 ()이 고려 명종(明宗) 떄 참지정사(參知政事 : 중서문하성의 종2품 벼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하음(河陰 : 강화의 옛 지명) ()에 봉해졌으므로,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하는 개성파(開城派)가 있으며, 둘째는 영분공 명종(鳴鐘)18세손 ()이 조선 때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 : 경적과 문서를 다루고 왕의 고문에 응하던 관청의 정3품 벼슬)을 거쳐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올랐다가 1498(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화()를 입고 평안남도 숙천(肅川)에 적거(謫居)하게 되자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로 하여 숙천파(肅川派)의 계통을 이었다.

또 다른 한 계통은 광()의 증손(曾孫)으로 조선조(朝鮮朝)에서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낸 송학(松鶴)을 일세조로 하는 의주파(義州派)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성()이 봉군된 하음(河陰)이 강화(江華)의 옛 지명이므로, 강화(江華)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강화(江華)는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우리나라 다섯 번째 섬으로, 일찌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도 등장한 유서깊은 고장이다.

문헌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에는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 불리웠다가 고구려 시대에 혈구군(穴口郡)으로, 신라(新羅) 시대에는 해구군(海口郡)으로 하였다.

그후 서기 940(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江華)로 개칭되었으며, 고려(高麗)시대 몽고의 침입 때와 조선(朝鮮)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임시수도(臨時首都)의 역할을 하였고, 수도의 관문에 위치한 까닭으로 근세(近世)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 1871) ․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 :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을 열거하면 개성파(開城派)의 장생(長生)이 고려 때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 추밀원의 정3품 벼슬)를 지냈으며, 원벽(元壁)은 문하시중(門下侍中 : 문하성의 최고 벼슬, 1)과 찬성사(贊成事), 성손(性遜)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조선 때 와서는 상장군 성손(姓孫)의 아들로 전라우도 수군우후(全羅右道水軍虞候)를 지낸 인보(仁輔)와 선전관

(宣傳官)을 거쳐 감찰(監察)을 역임한 의보(義輔), 자인

현감(慈仁縣監) 예보(禮輔),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지보(智輔) 4형제가 유명했다.

그외 삭녕 군수(朔寧郡守) 경언(慶彦), 서천 군수(舒川郡守) 경우(慶禹), 통정대부(通政大夫) 경준(慶俊) 등이 뛰어났으며, 성범(成範)은 명천 현감(明川縣監)과 수원 판관(水原判官)을 거쳐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우 성헌(成憲)은 서천 군수(舒川郡守)를 거쳐 김해 부사(金海府使)로 나갔다.

숙천파(肅川派)의 인물로는 파조(派祖)인 광()의 아들 도순(道淳)이 나라의 의식(儀式)을 맡아보던 관청인 통례원(通禮院)의 우통례(右通禮)를 지냈고, 그의 아들 철손(哲遜)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 중추원의 정2품 무관직 벼슬)를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 구정(九鼎), 참의(參議 : 조선 때 육조에 속해있던 정3품 벼슬)를 지낸 여전(汝銓)․인순(仁淳)․숭흘(崇屹)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한편 의주파(義州派)에서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에 등용되었다가 연산군(燕山君)때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를 입은 계후(繼厚)와 정3품 당상관(堂上官) 무관(武官)의 관계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른 봉원(鳳元)을 비롯하여 사과(司果) 지정(志禎), 부호군(副護軍) 이순(履淳) 등이 가문(家門)을 대표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강화 김씨(江華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392가구 4,4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개성파(開城派)

김장생(金長生) 고려(高麗)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

김원벽(金元壁)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

김성손(金性遜) 고려 때 상장군(上將軍)을 역임.

김인보(金仁輔) 조선 때 전라우도 수군우후(水軍虞侯)를 지냈다.

김의보(金義輔)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감찰(監察)을 지냈다.

김예보(金禮輔) 조선(朝鮮) 때 자인 현감(縣監)을 역임.

김지보(金智輔) 조선 때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

김 호(金 琥) 조선(朝鮮) 때 좌랑(佐郞)을 역임.

김경언(金慶彦) 조선 때 삭녕 군수(朔寧郡守)를 역임.

김경우(金慶禹) 조선 때 서천 군수(舒天郡守)를 역임.

김경준(金慶俊)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성률(金成律) 조선 때 사천 현감(泗川縣監)․경상도 우후(虞侯)․옹진 현령 등을 역임.

김성도(金成度) 조선 때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선전관(宣傳官)등을 지냈다.

김성범(金長生)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명천 현감(明川縣監)․수원 판관(水原判官)․호조 정랑(戶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김성헌(金成憲) 1514(중종 9) 무과별시(武科別試)에 급제, 선전관(宣傳官)․감찰(監察)․판관(判官)을 거쳐 영암군수(靈岩郡守)를 지냈다.

김 용(金 鎔) 조선 때 함흥 판관(咸興判官)․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역임.

김진옥(金振玉) 조선 때 사옹원 주부(司饔院主簿) 역임.

김시하(金時夏)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역임.

김용정(金用鼎) 조선 때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역임.

김광수(金光洙) 조선(朝鮮) 때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다.

김응일(金應鎰) 조선(朝鮮)에서 통정대부․경연 참찬관․좌부 승지(左副承旨) 등을 지냈다.

김응려(金應呂) 도정(都正)을 거쳐 사천 현감(泗川縣監)으로 나갔다.

김용각(金用珏)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아산 현감(牙山縣監)을 지냈다.

김용규(金用奎) 조선 때 장연 현감(長淵 縣監)을 역임

김용하(金用河)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역임.

김용철(金用喆) 조선 때 동몽교관․곽산 군수(郭山郡守) 등을 역임.

김용한(金用漢) 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역임.

김용준(金用俊) 강원도 관찰부 주사(江原道觀察府主事)․판임관(判任官) 등을 지냈다.

 

숙천파(肅川派)

 

김 광(金 光) 조선 때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

김철손(金哲遜) 조선(朝鮮)에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

김구정(金九鼎)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도순(金道淳) 조선 때 통례원 우통례(通禮院右通禮)를 역임.

김여전(金汝銓) 조선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숭흘(金崇屹) 조선(朝鮮) 떄 참의(參議)를 역임.

김화식(金化湜) 조선 때 목사(牧使)를 역임.

김현진(金賢鎭) 조선(朝鮮) 때 목사(牧使)를 역임.

김곤진(金坤鎭) 조선 때 의관(議官)을 역임.

김태순(金泰淳)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

김처주(金處冑)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정일(金正日)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

김광찬(金廣瓚)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

의주파(義州派)

김송학(金松鶴) 조선 때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다.

김계후(金繼厚)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김봉원(金鳳元)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지정(金志禎) 무과(武科)에 급제, 사과(司果)를 역임.

김이순(金履淳)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