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태인경씨시조(泰仁景氏),경여송(景汝松),태인경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11-09 13:39 수정일 : 2018-02-18 19:5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우리나라 경씨(景氏)는 중국(中國) 진양(晋陽 : 태원을 달리 일컫는 말)의 초(楚)나라 공족(公族: 황곡의 동족, 왕족)에 연원(淵源)을 두고 있으며, 은(殷)나라 현인(賢人) 기자(箕子)를 호종(扈從)하여 동래(東來)해 온 경여송(景汝松)이 평양(平壤)에 정착(定着) 함으로써 문호(門戶)가 열렸다고 한다.

태인(泰仁)은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군(井邑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신라시대(新羅時代)의 태산(泰山: 대산 또는 대시산이라고도 함)과 고려(高麗)의 인의(仁義)를 합한 명칭(名稱)이다.

경씨(景氏)의 본관(本貫)은 태인(泰仁)과 해주(海州)를 비롯하여 충주(忠州)․경주(慶州)․밀양(密陽)․장연(長淵)․치등(置等 : 전북 순창지방)․능향(綾鄕 : 전북 태인지방)․복흥(福興 : 전북 장수지방)등 10여 개의 관향(貫鄕)이 있는 것을 전(傳)하나 태인(泰仁)과 해주(海州)를 제외한 본관(本貫)은 미상(未詳)이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조(高麗朝)에서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 왕명의 출납․숙위․군기 등에 관한 일을 맏아보던 종 2품 벼슬)를 지내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올라 태산군(泰山君)에 봉해진 경차(景 磋)를 시조(始祖)로 하고, 사공(司空)을 역임한 상조(祥租 : 예정의 맏아들)를 태인파(泰仁派)로,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상록(祥錄 : 예정의 차남)을 해주파(海州派)를 하여 가계(家系)를 이어오면서 고려말(高麗末)과 조선전기(朝鮮前期)에 걸쳐 무용(武勇)을 떨침으로써 가문(家門)의 성세(盛勢)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인물

특히 제조(提調 : 각 사, 또는 청의 관제사으이 우두머리가 아닌 사람에게 그 관청의 일을 다스리게 하던 종1,2품의 관원)를 지낸 훤(喧)의 아들 세정(世貞)은 활을 잘 쏘아 명성을 날렸고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와 경기도 병마절도사(京畿道兵馬節度使)를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시산군에 봉해졌으므로 아들 일창(日昌 : 수문전 태학사를 지냄)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 희(曦)는 벼슬이 태학사(太學士 : 조선 때 홍문관 대재학을 달리 일컫던 말)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한편 응순(應舜)은 통사(通事)로서 임진왜란 때 활동하다가 왜군(倭軍)에게 죽음을 당했고, 기(耆)는 예문관 대

제학(大提學 :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는 일을 맏아보던 정 2품의 벼슬)을 겨펴 시산군(時山君)에 봉해졌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첨의평리(僉議評理)를 거쳐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인(寅)과 현감(縣監)을 지낸 극중

(克中)․시행(時行 : 어사 청의 아들)․세성(世誠 : 거륜의 아들) 등이 유명했으며, 흔(昕)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판관(判官)을 지낸 덕윤(德潤)과 함께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이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경씨(泰仁景氏)는 전국에 총 1,2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태인경씨조상인물

경상조(景祥組) 고려(高麗)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경상록(景祥祿) 고려(高麗) 때 복야(僕射)를 지냈다.

경기(景 耆) 고려(高麗)에서 제조(提調)를 지냈다.

경훤(景 暄) 고려(高麗)때 제조(提調)를 지냈다.

경세양(景世揚) 고려조(高麗朝)에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경세정(景世訂) 고려에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냈다.

경세정(景世貞) 고려 때 경기병사(京機兵使)를 지냈다.

경일창(景日昌) 고려(高麗) 때 수문전 태학사(修文殿太學士)를 지냈다.

경묵(景 黙) 고려에서 대사공을 지냈다.

경익충(景益忠) 고려 때 수문전 태학사(修文殿太學士)를 지냈다.

경건(景 健) 고려조에 진사(進士)였다.

경희(景 曦) 고려조(高麗朝)에 감무(監務)를 역임하였다.

경인(景 寅) 조선(朝鮮) 때 감무(監務)를 역임하였다.

경응순(景應舜) 조선 때 통사(通事)를 지냈다.

경극중(景克中)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경성걸(景成傑) 조선(朝鮮) 때 감무(監務)를 지냈다.

경거윤(景居倫) 호(號)는 세헌(洗軒). 조선(朝鮮) 때 내자시봉사(內資寺奉事)를 지냈으면 효행(孝行)이 뛰어나 부모(父母) 시중을 위해 벼슬을 물러났다.

경득수(景得壽)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많은 공(功)을 세워 공신(功臣)에 책록되었다.

경청(景 淸) 1369년(공민왕 18) 명(明)나라 과거에 3등으로 급제, 건문(建文) 황제밑에서 좌첨도어사(左僉都御事)를 지냈다.

경흔(景 昕)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경시행(景時行) 1384 (우왕 10) ~ ?

자(字)는 원여(元汝), 청(淸)의 아들. 어려서 효경(孝經)에 능통하였고 학문(學問)이 뛰어났다. 조선(朝鮮) 단종(端宗) 때 옥구현감(沃溝縣監)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푸고 청백(淸白)한 관리로 유명했다.

경시우(景時禹) 정유재란 때 의병(義兵)을 모아 왜적과 싸워 수차례 대승을 거두었고, 부안(扶安)의 호벌치(胡伐峙) 전투에서 수만 명의 왜병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주정자에 전적비(戰蹟碑)가 세워졌다.

경세성(景世誠)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경대진(景大進)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경성(景 星) 조선에서 훈도(訓導)를 지냈다.

경몽량(景夢良)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경덕윤(景德潤)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경원홍(景元弘)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경이혁(景以爀) 조선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