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8월 영국, 최대 휴양지였던 섬머랜드 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려고 호텔에 왔던 3,000여 명 중 5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부상을 입어 영국 최대의 화재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몇 년 후, 한 심리학자가 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위기 상황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기사와 생존자 면접을 통해 그는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다.
화재가 발생하자 가족 단위의 휴양객들은 서로를 찾아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사력을 다해 도망쳐서 대부분 생존했다. 반면 친구 단위로 왔던 휴양객들은 제각기 흩어졌고 불과 4분의 1만이 살아남았다. 이 연구를 통해 심리학자는 위기 상황에서 가족이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신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가족은 가장 작은 사회화 기관이기도 하고, 1차 집단을 설명할 때 대표적 사례가 된다.
이렇듯 중요한 기능과 의미를 지니는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다양하다. 청소년들이 상담을 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가족 간 갈등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누구는 가족이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며, 누구는 가족을 전쟁터라고 말한다.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TV에서 가족은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는 경우에도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의 순간에 가족이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가족은 위기인 것 같다. 나에게 가족은 무엇이고, 누가 가족일까?
가족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변화할까?
가족에 관한 연구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학자는 머독 이다. 그는 가족을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고, 주거와 경제적인 협력을 같이하며 자녀의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또 가족 내에서 혼인한 세대가 하나인지 여부를 따지면서 핵가족과 확대 가족과의 분류를 시도하였다. 다양한 국가와 부족의 결혼 및 가족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가족 개념을 제시한 그의 정의에서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가족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조금 다른 대답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같이 사는 친구가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나 혼자 가족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 동물을 아들이나 딸처럼 애지중지 기르기도 한다.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최근 들어 버제스와 로크의 가족에 대한 정의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들은 가족을 '혼인, 혈연 또는 입양에 의해 결합된 집단으로 하나의 가구(家口)를 형성하고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형제와 자매라는 각각의 사회적 역할 속에서 상호 작용하며 의사소통하고 공통의 문화를 창조, 유지하는 집단'이라고 하였다. 머독과 달리 입양도 가족의 구성 요소로 포함하여 가족을 혈연집단으로서만 서술하지 않았고, 가족 내에서의 기능적인 측면도 강조한다.
실제로 가족을 결혼이나 혈연에 한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종 매체에서 결혼이나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다양한 가족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서로 함께 오래 살면서 정을 나누는 경우를 가족의 울타리로 그리는 시도들도 하고 있다. 영화 〈가족의 탄생〉이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니 이제 가족을 단지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가족 구성원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적합한 논의인지도 모른다.
1인 가구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30년 우리나라 인구 예측 통계에는 1인 가구가 2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요즘은 대략 20퍼센트 수준을 웃돌고 있다. 그래서 1인 가구도 가족의 한 유형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1인 가구가 가족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학에서는 가족을 사회 집단이라고 한다. 사회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2인 이상의 구성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1인 가구는 가족이 아니다. 그런데 가족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1인 가구를 가족의 새로운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회사 때문에 부산에 살아서 주민등록이 부산에 되어 있고 어머니와 아들은 대구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면, 이 가족은 부산에 사는 아버지 1인 가구와 대구에 어머니와 자녀가 사는 2인 가구로 구분이 된다. 이혼하였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후 홀로 사는 경우에도 1인 가구이다.
이처럼 1인 가구는 독립된 구성원인 경우도 있고 가족의 한 구성원인 경우가 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1인 가구를 '가족'으로 분류하면 가족의 구성 특성에 따라 가족 유형을 나누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는 문제도 있다.
1인 가구가 가족인지 아닌지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 보자. 전통적으로 가족을 'the family'라는 영어로 사용할 때의 가족은 남녀의 혼인과 출산에 기초한 관계를 의미해서 혼인과 혈연에 기반을 둔 가족 이미지가 강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핵가족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을 'families'라는 영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이혼에 의해서도 홀로 되는 사람, 독신인 사람, 그리고 재혼으로 새롭게 같이 사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가족이 되지 않을까?
달라지는 가족의 기능
스웨덴에 가면 '동거 파트너 구합니다.'라는 공개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 가구 비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 정부는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고 사회적인 보호 장치와 제도를 마련하여 결혼한 가족과 비슷한 지원을 해준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가족 개념을 설명할 때 혼인이나 혈연관계 대신 다른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그런데 가족에 대한 개념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사회적 기능도 달라지고 있다. 혈연 중심의 가족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고, 더구나 자녀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하지만, 결혼한 부부나 동거 커플 모두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를 낳아도 가족에서 자녀 양육과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정도가 약해진다. 그래서 출산율이 낮은 사회일수록 정부의 양육 정책 지원이 강화된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아이 양육을 부부나 가족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양육을 지원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여러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너희 집이 어디냐?"라고 물으면서 가정에서의 양육과 사회화 기능을 강조한 데 반해 요즘에는 "너희 학교가 어디냐?"라며 아이의 교육에 대한 책임이 학교와 같은 사회에 있음을 드러낸다. 아이뿐만 아니다. 과거에는 아프거나 노쇠한 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문제는 가족 간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지될 정도로 금기시되는 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실버타운이 번성하고, 가족을 대신하여 아픈 노인을 간병하는 요양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나이든 부모를 맡겨두고 주말에 가족이 그곳을 방문하는 일이 더 이상 외국 영화에서나 보는 풍경이 아니게 된 것이다.
산업화 이후로 생산 기능이 회사 등 기업으로 이전되면서 가족이 가진 경제적 역할이 약화되었다면 최근에는 자녀 양육 및 교육이나 노인 보호 기능도 줄어들고 있다. 다만 가족 간의 문화 활동이나 휴가 문화 등이 발달하면서 친밀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정서적 유대 기능은 점점 늘어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워낙 모이기가 힘든 세상이니 그나마 가족 간의 유대와 정서적 지지가 가족의 기능으로 강조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한 가족이 오전 8시 경에 각자 집에서 나가 자신의 공간에서 맡은 일을 하고 오후 8시 경에는 함께 저녁을 먹는 패턴이 일상적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각각 바쁜 생활로 일주일에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면서 얼굴 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상황에서 정말로 가족은 정서적 유대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뉴스에 수시로 나오는 가족 학대, 가족 간 폭력이나 살인, 유산 싸움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질문은 정말로 절박해진다.
가족의 해체인가, 다양화인가?
화보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가족은 햇살이 눈부신 언덕에 아빠의 목마를 탄 딸과 엄마 손을 잡은 아들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요즘 TV에 나오는 가족은 한 부모 가족, 재혼 가족, 계약 결혼 부부, 동거하는 젊은이 등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족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기능론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이들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서 예전과 같은 전통적인 가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며, 결혼과 출산 이외에도 다양성에 기반을 둔 가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갈등론 자나 사회 변혁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들에게 가족의 모습은 사회 형태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현재의 가족은 새로이 구성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가족의 모습이 어떠하든 가족간의 유대와 신뢰는 더 강화되고 정서적인 안정은 더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부장 제도의 탈피, 새로운 모계 사회로?
친사촌, 외사촌, 고종사촌, 이종사촌. 사촌을 이렇게 다양하게 나눈 것은 부계와 모계 간의 친족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촌과 달리 친사촌은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 등 아버지 형제의 자녀의 관계를 일컫는 말인데, 가부장 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가장 강력했기 때문에 친사촌이야말로 진짜 사촌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사촌간의 관계보다 외사촌이나 이종사촌 간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1990년대 이후 워킹맘이 많아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아이 양육을 위해 여성들이 친정에 손을 벌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외할머니가 손자를 도맡아 기르거나 엄마의 언니나 여동생인 이모들이 돌보면서 어머니의 동성 형제의 자녀들인 이종사촌간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이다.
어떤 경우엔 아이 양육을 위해 가까운 동네로 결혼한 자매들이 서로 모이다 보니, 과거와 달리 친사촌보다는 이종사촌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친사촌보다는 이종사촌간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친정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가부장적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회적 논의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계 사회는 자녀의 성이 아버지를 따라 결정되고 재산이 아들을 중심으로 상속되는 제도이다. 당연히 모계 사회도 혈통이나 상속이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종종 모계라고 하여도 재산 상속 등이 모계의 여자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여자의 혈족 중 남자, 즉 외삼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모계 사회로 전환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부계 사회임에도 자녀 양육을 위한 지원 기능이 모계로 이전된 위장된 모계 사회의 모습이다. 즉 자녀 양육은 엄마 몫이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확장하여 그 자녀 양육의 책임을 친정집까지 확대시키지만 가족 간의 중요한 권리문제 등은 여전히 부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모습에 신모계제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아직 문제가 있다. ◉자료 수집-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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